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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돋보기] ‘이빨 사기극’ 12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이씨는 ‘이 일’을 시작한 건 경미한 자동차 추돌사고가 계기가 됐다. 이씨는 2007년 5월 자신이 사는 직산 부근 도로에서 추돌 사고를 당해 앞니가 조금 깨졌다. 이 사고로 치아 치료비 보험금 450만원이 지급되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 달후 이씨는 인근 슈퍼에서 R회사의 스모크햄을 샀다. 그리고 R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당신네 햄을 먹다 쇳조각을 씹어 앞니가 깨졌으니 어떡할 거냐”고 따져 물었다. 즉시 R회사 햄 제품이 가입된 보험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치료비로 300만원이 지급됐다.

R식품회사는 이씨가 언론사나 시민단체에 연락할 게 두려워 사실 조사를 하기 앞서 해당 보험사에 연락해 ‘조속한 해결’을 당부했던 것이다. 이씨가 이 허점을 알아내는 데는 큰 노력이 들지 않았다.

또 이씨는 한 달후 대형유통점에서 M사 떡갈비를 샀다. 그는 떡갈비 포장지에 표기된 식품가입 보험사를 살피는 교묘함을 보였다. 저번과 같은 보험사일 경우 의심을 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똑 같은 내용의 전화를 M사에 했다. M사가 가입한 보험사로부터 며칠만에 치료비 400여 만원이 지급됐다.

신이 난 이씨는 아예 동네에 버려진 헌가구에서 쇠못을 여러 개 뽑아 보관했다. 빵·햄·만두·포장불고기 등이 ‘주공격’ 대상이었다. 보험사가 겹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매번 어김없이 300만~500만원씩 들어왔다. 어떤 보험사는 두번이나 당하고서도 의심없이 보험금을 지급했다. 이씨는 같은 보험사래도 몇달 지나면 담당자가 바뀌어 이전 보험금 지급 사실을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이렇게 2년간 두달 한번꼴로 ‘이빨 사기극’을 펼쳤다.

하지만 운명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H보험사 김모씨에게 5개월 만에 똑같은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해달라는 식품사의 연락이 왔다. 피해 당사자를 만나보니 바로 이씨였다. “어떻게 전혀 나오지 않던 식품 속 쇠못을 이씨만 두 번씩이나 씹는단 말입니까.”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천안서북경찰서 안도욱 팀장은 상습범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최근 몇년간 이씨에게 지급된 보험금 내역을 알아봤다. 놀랍게도 그가 식품 속 쇠못을 씹은 횟수는 총 12회였다. 벽돌공인 이씨는 부인·자녀들과 별거 중이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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