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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1년]4.기업들 생존경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쌍용양회 용평사업부 서울영업소장인 장윤규 (張允奎.44) 부장은 매주 두번씩 강원도 용평에 당일치기 출장을 다녀온다.

오전 5시 출발해 현지에서 업무를 보고 다음날 오전 2시 다시 서울에 도착하는 강행군을 하는 것. 張부장은 그러나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정상출근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전엔 2박3일의 여유 있던 출장이 이처럼 빡빡해졌다.

용평사업부는 연초 영업.영업기획.회원관리 등 3개 팀을 하나로 합친 것. 직원도 32명에서 23명으로 줄였다.

가장 큰 변화는 영업방식. 과거엔 기존 거래처 위주로 '앉아서' 관리했으나 IMF 이후 레저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고객을 찾아 밑바닥을 훑는 투망식 영업을 펴고 있다.

張부장은 "종교단체.학교.학회 등은 물론 고교동창회.아파트부녀회까지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고 말했다.

그렇다고 실적이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 1년동안 우리 기업과 직장인들은 생존을 위한 피나는 싸움을 해야 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는 말이 직장인의 화두였다.

그동안 외형 위주의 확대경쟁과 차입경영으로 '거품' 을 쌓아온 우리 기업들은 갑작스런 내수부진과 금융경색 등으로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구조조정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전자회사 金모 (32) 대리는 얼마전 거래처 손님 3명에게 저녁 접대를 했다가 낭패를 겪었다.

다음날 회사측에 24만원짜리 영수증을 제출했으나 "성과가 불확실한 지출은 인정할 수 없다" 며 퇴짜를 맞은 것. 이처럼 기업들은 감봉.감원은 물론 각종 경비를 삭감했다.

현대.삼성.대우 등 대부분 대기업들이 활동비.접대비 등 경비를 30~50%까지 줄이는 자린고비 경영에 나섰다.

감봉과 명예퇴직에서 순환휴가.재배치.집단휴업 등을 거쳐 정리해고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인력조정 방법이 동원됐다.

인력감축과 생산성 향상을 겨냥한 분사 (分社) 와 외부발주 (아웃소싱) 도 유행처럼 확산됐다.

5대 그룹에서만 이미 70여개사가 분사했다.

부동산 등 자산과 계열사.사업부문을 매각하고 외자를 유치하는 것도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 '팔다리' 뿐 아니라 '몸통' 까지 도려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30대 그룹의 자구실적 (매각.외자유치.유상증자 등) 은 16조1천억원. 이들이 매물로 내놓은 부동산만 25조원에 달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존 재벌구도가 무너지는 사실도 눈에 띄는 변화중 하나. 30대 그룹은 연초 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기조실.비서실을 해체했고 상호지급보증 해소.부채비율 축소 등도 일정을 정해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엔 30대 그룹의 55개 기업이 정부로부터 퇴출 판정을 받았고 6~64대 그룹 가운데 16개 그룹 43개 업체가 기업구조조정 (워크아웃) 을 확정했거나 신청했다.

거평.신호.신원.뉴코아 등 신흥 재벌들이 줄줄이 주저앉았고 동아.한라.고합.진로.해태.아남.강원산업 등 전통 있는 재벌들도 존립이 위태롭다.

쌍용.한화.두산.효성.한솔.대상 등은 주력기업을 팔거나 대대적 인수.합병 (M&A) 을 단행, 사실상 그룹을 해체했다.

현대.삼성.대우.LG.SK 등 5대 그룹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계열사를 40%가량 줄이기로 약속했고 7개 업종에서 빅딜을 추진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사정은 더욱 나빴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쓰기가 대기업에 비해 어려운 데다 대기업의 구조조정 여파로 상당수가 무너졌다.

올들어 9월까지 부도업체수 (2만27개) 는 지난해 전체 (1만7천1백68개) 를 크게 웃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기업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며 더욱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IMF체제 극복의 지름길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구조조정이 경쟁력 또는 핵심역량의 강화보다 당장의 생존에 너무 연연하는 소극적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조급하고 근시안적인, 그리고 지나치게 축소지향적인 추진으로 성장의 여력마저 소진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재훈.김준현 기자

<도움을 주신분>

▶김학은 연세대교수 ▶조동성 서울대교수 ▶오강현 산업자원부차관보 ▶유한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무 ▶양현봉 산업연구원중소기업팀장▶김용호 대우경제연구소이사 ▶최봉 삼성경제연구원수석연구원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동향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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