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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산유국들 '기름진날' 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이제 잔치는 끝났다. "

중동 부국 쿠웨이트의 셰이크 사드 알 압둘라 알 사바 왕세자 겸 총리는 지난달 두차례에 걸쳐 국민들에게 "국민과 국가는 주고 받는 관계" 라면서 지금까지처럼 국가가 일방적인 혜택을 베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한 것이다.

쿠웨이트는 또 지금까지 완벽한 사회보장의 핵심이었던 각종 보조금도 삭감하고 사회보장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동안 없던 소득세도 도입할 계획이다.

인근 오만의 카부스 빈 사이드 국왕도 힘든 일을 기피하고 국가가 마련해 주는 편한 일만 찾는 국민들에게 "국가에서 제공하는 어떤 직업에서라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고 훈계하고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영어와 컴퓨터 등 직업교육을 강화, 외국 근로자를 내쫓고 2000년까지 30만 자국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사우디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중동 산유부국들의 이같은 변화 몸부림은 과잉생산과 세계적 경제위기로 인한 석유수요 감소로 국가전체 수입의 70~80%를 차지하는 석유 가격이 2년사이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4백50억달러의 석유판매 수입을 올린 사우디아라비아의 올해 수입은 3백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보이며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 (UAE) 등도 각각 40억달러 이상의 석유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

그래서 오일 달러가 넘쳐흐르던 시절의 직업.무료의료혜택 등 각종 사회보장책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더구나 사우디.쿠웨이트.UAE.카타르.오만.바레인 등 걸프협력위원회 (GCC) 6개국의 경우 전체 인구 중 40%가 14세 이하 인구 (97년 기준.한국은 22.3%) 여서 당장 수년 뒤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도 큰 문제다.

한 방법으로 GCC국가들은 지난 2년간 75만명의 불법 취업 외국인을 추방, 이들이 차지했던 일자리를 내국인으로 채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힘든 일을 싫어하는 국민들의 성향이다.

지난달 쿠웨이트 교육부 소속 5백여명 여직원들은 지금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해왔던 차나 편지 심부름.화장실 청소감독 등을 하게 되자 "이런 일은 쿠웨이트인에게 불명예스러운 것" 이라며 파업 위협까지 했다.

이런 상황이 사회불안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왕정체제가 흔들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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