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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상의 맛있는 나들이] 인천 '옛날 그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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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시골 고향에 대한 추억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천렵이다. 한 아이는 찌그러진 냄비를 챙겨 나오고, 다른 친구는 어머니가 아끼는 고추장을 한 사발 퍼들고 온다. 벌써 냇물에 들어간 아이들은 족대를 들고 이리저리 물고기를 몰고 다닌다. 아이들의 엉성한 족대질로 허탕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한번에 손가락만한 물고기라도 몇 마리 걸려 환호성을 지를 때도 있다.

물고기가 어느 정도 잡히면 한 아이는 남의 밭에서 풋고추와 푸성귀를 날쌔게 챙겨온다. 다른 아이들은 그동안 냇가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냄비를 올린다. 고추장을 푼 뻘건 국물에 갓 잡은 피라미.미꾸라지 등 물고기가 산 채로 들어가고, 풋고추와 깻잎.배춧잎.호박잎 등 푸성귀도 손으로 뚝뚝 잘라 넣는다. 쌀이든, 밥이든, 국수든, 수제비 반죽이든 아이들이 나름대로 구한 모든 재료가 한 냄비 속에 담긴다.

찌그러진 냄비 속의 뻘건 내용물을 보글보글 끓여내면 곧 아이들의 냄비 쟁탈전이 벌어진다. 별다르게 들어간 것도 없는데 퉁퉁 불어터진 국수 한 올도 빠뜨리지 않고 바닥까지 싹싹 비우던 그 어죽 맛이라니….

인천 송도유원지 인근에 있는 '옛날 그집(032-831-3812)'에선 바로 그 어죽을 닮은 추어탕을 만날 수 있다. 식사 메뉴로는 수제비 추어탕만 있는데 미꾸라지를 갈아 쓰는 것(7000원)과 통미꾸라지로 만든 것(8000원) 두 종류. 추어탕을 시키면 찌그러진 냄비 대신 가마솥이 식탁의 화로에 오른다. 주방에서 한바탕 끓인 것이라 금방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뻘겋고 걸쭉한 국물 속에서 노랗게 익은 수제비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반달 모양의 호박이랑 감자, 큼지막하게 썬 대파도 들어있다.

큰 양푼에 인원수에 맞춰 밥이 담겨 나온다. 개인 그릇도 크기가 작은 양푼인데 일인당 두개씩 나온다. 한 그릇에는 밥을 덜고, 다른 한 그릇에는 가마솥의 추어탕을 덜어먹는다. 국자를 넣어 추어탕을 뜨는 순간 소면 사리가 보인다. 양푼 그릇에 소면까지 영락없는 천렵 후 끓여 먹는 미꾸라지 어죽이다.

국물이 짜지 않으면서 칼칼하고 매콤하다. 미꾸라지 특유의 흙냄새도 없고 깔끔하다. 입안에서 거칠게 느껴지는 것도 없다. 국물에 된장을 함께 풀어 넣었고, 갈아 만든 미꾸라지의 뼈를 제대로 발라냈기 때문이다.

부추김치.동치미김치.배추김치.어묵볶음.콩나물 등 밑반찬도 매력 있다. 누룽지 숭늉까지 먹고 나면 속옷까지 땀에 흠뻑 젖지만 한여름의 더위를 모두 털어낸 기분이다. 도로 예정지에 자리한 낡은 건물에 재래식 화장실까지, 시설 면에선 부족한 점이 있지만 천렵이나 어죽의 추억을 일깨우기엔 충분한 집이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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