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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양김의 화해 국민통합 밑거름 되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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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어제 와병 중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찾았다. DJ가 위중한 상태라 양인이 직접 손을 잡지는 못했지만 YS의 병문안으로 두 사람의 20여 년 불화는 극적으로 화해의 강을 건넜다. 이 장면은 국가지도자들의 역사적 갈등과 국민 화합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전기(轉機)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대개 특정한 지역과 이념 집단을 상징하는 ‘대표선수’의 의미가 강하다. 이런 대표성은 퇴임 후에도 지속되곤 한다. 그래서 그들의 화합은 국가통합에 중요하며 거꾸로 그들의 불화는 통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역사적 굴곡을 겪으면서 전직 대통령들이 화합보다는 불화에 빠져들었다. 개인적 원한과 보복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의(大義)도, 동지애도 실종되곤 했다. 한국에만 있는 기형적인 전직 국가원수 문화다.

YS와 DJ는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의 격랑 속에서 민주화 투쟁의 돛단배를 탔던 생사(生死)의 동지였다. 한 사람은 의원직을 빼앗기고 단식도 했으며 다른 사람은 납치됐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두 사람은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면서 야당 권력을 놓고 싸우기도 했지만 그들을 묶었던 대의는 민주화였다. 그런 사람들이 1987년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대선에서 패하면서 반목으로 내달렸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군부 요직을 주고받은 친구였고 12·12 군사쿠데타를 결행한 사선(死線)의 동지였다. 그랬던 이들이 5공 청산을 둘러싸고 갈라지더니 여전히 냉랭한 관계로 남아있다. 전·노는 YS와 상극(相剋)의 관계로 남아있다. YS 정권하에서 벌어진 비자금 수사와 12·12 재판 때문이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실상 자신이 YS를 후계자로 밀었는데도 보복을 당했다는 반감을 가지고 있다. 사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부분의 선임 대통령들과 화합적인 관계를 전혀 갖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들의 불화가 이러하니 청와대 초청행사에는 항상 의자가 한두 개 빠졌고 새 대통령의 취임식에선 전직들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전직 대통령들이 국가적 화합의 중재자가 된다. 9·11 테러나 태풍 카트리나 참사처럼 국가적 재난사태가 터지면 전직 대통령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현직 대통령을 응원하고 국민의 단결에 앞장선다. 지난 1월 오바마의 취임을 앞두고는 카터, 아버지 부시, 클린턴, 아들 부시 등 전·현직 대통령 5인이 백악관에 모여 환하게 웃는 모습을 국민에게 선사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 공유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당선인의 성공을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들의 불화는 대부분 역사적 대의보다는 개인적 감정이나 이해관계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몸과 마음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소유다. 그들이 감정의 소리(小利)를 접고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이라는 대의로 나설 때 한국의 ‘대통령 자산’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DJ가 하루빨리 병석에서 털고 일어나 YS와 함께 화합의 환한 웃음을 보여주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