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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 전용룸 둔 원정도박단 수백 명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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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달 8일 회사 공금 890억여원을 챙겨 달아난 동아건설 전 재무담당 박모(48) 부장. 그를 둘러싼 의문 중 하나가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썼을까였다.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단서가 나타났다. 해외원정도박이다. 경찰이 9일 발표한 해외원정도박단 사건에 그의 이름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마카오에 위치한 세계 최대 리조트 ‘베네치안 마카오’. 5만1000㎡ 규모의 호텔 카지노엔 ‘SEOUL’이라는 문패를 단 도박장이 있었다. 국내 카지노업체 C사가 연 일명 ‘서울방’이다. 한국 도박판의 ‘큰손’들이 찾는 원정도박 아지트였다. 박 부장은 서울방에서도 큰손 중의 큰손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올 1, 2월 두 차례의 원정도박에서 그는 70억원을 썼다. 빼돌린 돈 890억원의 10분의 1에 가까운 금액이다. 서울방의 손님 중에는 개그맨 K씨(34)도 끼어 있었다.

◆원스톱 호화 서비스=C사 사장 김모(40)씨는 지난해 3월 서울 삼성동에 회사를 차렸다. 강원랜드 등 국내 유명 카지노에 근무했던 직원 10여 명을 영입했다. 씀씀이가 큰 단골들을 유치해 VIP 마케팅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베네치안 마카오에 46억원을 내고 서울방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서울방은 원스톱 호화 서비스를 내세워 손님을 끌었다. 도박 손님들은 수천만~수십억원대의 도박 자금을 환전할 필요가 없었다. C사에 맡기면 현지에서 금액에 상응하는 도박칩 또는 현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업체는 항공권과 호텔을 무료로 마련해 줬다. 현지 공항엔 최고급 외제차를 몬 기사가 마중을 나왔다. 신원이 노출될 염려도 없었다. 카지노 이용권을 사려면 여권을 제시해야 했지만, C사는 법인 명의로 대신 이용권을 내줬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 직원은 마카오 시내 관광이나 쇼핑을 원하는 손님에겐 차를 몰고 가이드를 해줬다”며 “식사나 사우나 일정도 대신 잡아줬다”고 설명했다.

서울방의 판돈은 한 판이 최대 5000만원이었다. 사업가 손모(56)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19억원을, 개그맨 K씨는 한 차례 원정에 9000만원을 판돈으로 썼다.

경찰은 C사의 통장 거래 내역을 바탕으로 모두 200여 명이 원정도박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한다. C사는 이 도박장에서 지난 1년 동안 모두 104억원을 벌었다. 주요 수입은 도박칩 교환 수수료였다. 베팅 칩을 바꿀 때마다 1.25%의 수수료를 챙겼다. 또 환전 대신 ‘환치기’를 해 주는 대가로 4~6%의 수수료를 받았다. 서울경찰청 김병찬 강력계장은 “11개월 동안 오간 판돈이 19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9일 관광진흥법 위반 등의 혐의로 C사 사장 김씨를 구속하고, 직원 15명과 사업자금을 댄 투자자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 또 수천만~수십억원대의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로 손씨와 개그맨 K씨 등 4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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