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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간 대신 색소폰 잡은 보라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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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마추어들인데 실력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어요? 하지만, 하모니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화합과 소통이라는 인생의 소중한 진리를 깨닫고 있어요.”

마하의 속도로 비행하는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던 손으로 국방대학교(총장 박창명 육군중장) 팝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박상묵(55·공사 24기·사진) 부총장의 말이다. 공군 소장인 그는 요즘 음악 활동을 통한 소통과 화합의 경험에 푹 빠져있다. 26명으로 이뤄진 팝스 오케스트라에서 조화를 만들어 내는 묘미를 느껴서다.

올해로 군 생활 37년째인 박 부총장은 비행시간이 3600시간에 이르는 베테랑 조종사다. 전투기 조종은 아찔한 경험의 연속이다. 전투비행단장과 공군교육사령관을 거치면서 수천 명에 이르는 부대원의 지휘관으로서 고뇌도 맛봤다. 부하가 조종한 전투기가 사고로 추락했을 땐 자식을 잃은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올해 2월25일 국방대 팝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그는 “인생에서 때론 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올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의정부에서 다문화 가정과 장병을 위해 유로코리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때다. 그는 프로팀과 협연중 어려운 부분에서 소리를 잘못 내면 공연이 망가질까 우려해 잠깐 연주를 멈추었다. 박 부총장은 자신이 잠깐 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하모니가 이뤄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음악활동을 시작한 건 지난해 4월 국방대 부총장으로 부임한 뒤 알토 색소폰을 배우면서다. 그러다 지난해 말 우연히 TV에 소개된 유럽의 가족 오케스트라를 보고 국방대에 팝스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로 결심했다. 대한민국의 안보정책을 개발하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국군의 싱크탱크인 국방대에 팝스오케스트라가 들어선 연유다. 국방대 팝스 오케스트엔 국방대에 복무중인 현역 군인과 군무원·교수·학생·가족까지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박 부총장의 부인도 오카리나 연주자로 참가하고 있다. 데뷔는 4월 방효복 전 국방대 총장 퇴임식 때 이뤄졌다.

박 부총장은 “우리나라 국민의 상당수는 중학교 시절까진 악기를 한두 가지 배우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대학입시며 바쁜 직장생활과 술자리 등으로 시간을 뺏기면서 모든 악기를 장롱 속에 넣어버린다”며 “장롱 속에 처박아뒀던 악기를 다시 꺼내자”라고 제안했다.

국방대 팝스오케스트라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한데 모여 연습을 한다. 지난 주말엔 2박3일 일정으로 영종도에서 합숙훈련도 했다. 창단한 지 5개월 남짓하지만 이미 다섯 차례나 공연했다. 이달 14일에는 국방대 개교 54주년 기념공연을 한다. 그는 “직장·마을 단위로 이런 모임들이 생겨 문화를 통한 소통의 길이 열렸으면 한다”면서 “앞으로 보육원이나 병원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나눔과 소통의 장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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