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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파적 이익으로 내년 예산 변질시키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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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나라당과 정부가 지난주 내년도 예산 편성 당정회의를 가졌다. 기획재정부는 “4대 강 살리기 사업은 국책 과제로 차질 없이 우선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례적으로 50명 넘게 몰려든 한나라당 의원들은 4대 강 사업 때문에 자기 지역구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나 복지비 예산이 줄어들지 모른다며 한마디씩 했다. 가두투쟁에 바쁜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행정복합도시는 단 한 푼의 예산 삭감도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년 예산안 편성은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 지난 1년간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인해 어차피 내년 세수는 11조원 이상 감소할 게 분명하다. 여기에다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맞물려 있다. 예산을 따내기 위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파적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다. 행복도시에 집착하는 쪽은 4대 강 사업을 무조건 비난하고, 4대 강 사업을 지지하는 진영은 행복도시를 만악의 근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혈세만 낭비하고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우선 내년에 4대 강 사업에 8조원 이상을 집중 배정하는 게 타당한지 묻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인 2012년까지 22조원을 투입해 4대 강 사업을 완공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내년에 이런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은 일종의 ‘대못 박기’나 다름없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정부가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4대 강 사업의 완공 시한에 얽매이지 말고 무리 없는 예산 배분을 통해 속도 조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

20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행정복합도시도 지금처럼 어정쩡한 상태로 계속 진행되면 유령도시로 전락할 게 뻔하다. 이런 불행을 막을 수 있는 당사자는 민주당과 선진당뿐이다. 정부나 한나라당은 이제 행복도시를 물릴 수도 없고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단도 없다. 지금으로선 민주당과 선진당에서 “경제 논리에 맞게 행복도시를 조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행복도시의 불행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내년 예산안이 정파적 이익 때문에 변질되지 않으려면 정부부터 뚜렷한 원칙을 세우고 흔들림 없이 집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예산 항목을 경제적 효과를 기준으로 철저하게 따져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전체 국민의 이익을 생각하면 결코 4대 강 사업이나 행복도시도 ‘성역’으로 간주해선 곤란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999년 예산 편성 때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효율적인 토건사업 예산을 삭감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라”고 한 쪽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는 “외환위기에 대처하고 실업자를 구제하려면 SOC 예산은 절대 줄일 수 없다”고 맞섰다. 10년이나 지났으면 이제는 최소한의 국익은 고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