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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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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며칠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조류사진 동호회원들이 서울 근교에서 주황빛 호반새를 찍는 모습을 보고 씁쓸했던 생각이 난다. 기자의 표현대로 풍광이 수려한 교외에서 먹잇감을 물고 포르르 둥지로 날아와 새끼들에게 먹이고 훌쩍 날아가는 호반새의 모습은 딱 동화 속의 한 장면이다. 10명이 넘는 동호회원들은 그 장면을 놓칠 새라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사람들이 그렇게 즐거울 때 새는 어떠했을까. 혼자였어도 신경이 쓰였을 텐데, 새끼를 키우는 어미일진대 근심이 이만저만 크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 본 낯선 침입자들의 서성거림과 웅성거림, 탁한 셔터 소리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는가. 그런 위중한 곳에 새끼들을 남겨두고 내키지 않는 날갯짓으로 먹잇감을 찾아 나서야 했을 새들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미안하고 은근히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그런 새들이 가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사 때문인지 우리 주변에선 이처럼 염치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공원에서 애완견이 배설해도 이를 치우는 주인을 보기 어렵고, 식당에서 아이들이 이리저리 제 집처럼 날뛰어도 말리는 부모 거의 없고, 지하철 안에서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미안해하는 기색조차 없는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피서지에서의 몰염치와 무례는 어떻고. 먹다 남은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깨진 유리병 조각을 백사장에 파묻고 가서 끔찍한 피해를 주는 일까지 있으니 이쯤 되면 범죄나 다름없는 막가파식 행태다. 흔히 쓰이는 영어 단어 가운데 ‘understand’란 낱말이 있다. ‘이해’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배려’라는 의미가 더 적확한 뜻일지도 모르겠다. ‘under’와 ’stand’라는 두 개의 낱말이 합쳐져서 직역하면 글자 그대로 ‘아래에 서 있다’는 뜻이 된다. 아마도 상대방보다 한 계단 아래에 서있는 게 곧 ‘배려’의 시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성자가 된 청소부』를 쓴 인도의 수행자이자 작가인 바바 하리다스가 들려주는 짧은 예화(例話)는 배려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고속도로는 쏟아져 나온 차량으로 곳곳이 정체되기 일쑤고, 좋다는 명승지와 피서지는 인파로 북새통이다. 바쁜 일상 잠시 접고 큰 맘 먹고 나왔을 텐데, 출발부터 짜증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왕 나온 여행길인데 옆 차량이 끼어들면 밉더라도 비켜주자. 놀이시설에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데 새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너그럽게 웃어주자. 상대방이 얼마나 고맙고 무안하고 미안하겠는가. 배려의 시작은 양보다. 양보는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고 상대의 기쁨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휴가철 아침, 서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집이든, 일터이든, 피서지이든, 도로이든, 공공장소이든, 오늘 하루로 끝날지라도 나부터 남을 위한 양보를 실천하자 다짐해 본다.

박국양 가천의대 길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