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死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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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11면

출중한 거미의 실 뽑기 기술에 걸린 잠자리가 누에고치처럼 둘둘 말려 황천길로 갑니다. 아군이 아군을 잡아먹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거미도, 잠자리도 모기와의 전쟁을 함께하는 고마운 전우입니다.
제게 끔찍한 것은 모기입니다. 조용히 책을 보거나, 멍하게 앉아 있을 때, 모기는 저공비행으로 종아리 뒤끝이나, 귀 밑 뒷목에 순식간에 빨대를 꽂아 피를 빠는 흡혈귀입니다. 기회를 엿보다가 잽싸게 내리쳐도 모기는 간데없고 제 손으로 제 뺨을 때린 꼴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인류 평화를 위해 나섰습니다. 거미의 아침식사를 방해했습니다. 이미 시체가 된 놈은 포기하고 다른 놈들은 적극 거두었습니다. 거미줄에 걸려 푸드득거리는 잠자리를 구해주었습니다. 거미에겐 미안하고, 잠자리에겐 고마운 아침입니다. 살아난 잠자리가 보답이라도 하는 듯 재빠른 날갯짓으로 창공을 날아갑니다.
부디 몸을 잘 추슬러 모기와의 전쟁에서 승전보를 기다립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시길 빕니다. 잠자리님.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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