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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총풍' 정치공세 책임져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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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뜩이나 스산한 경제위기 속에서 사회를 충격과 혼돈 속에 몰아 넣었던 '총풍 (銃風)'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결과 발표는 며칠 더 남아 있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안기부.검찰의 고위책임자들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을 보면 사건의 성격과 윤곽이 대체로 드러난다.

물론 남은 며칠 사이 새로운 사실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전체 틀이 바뀔 가능성은 무척 낮아 보인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피의자 3인의 혐의는 국가보안법상의 외환 (外患) 유치죄를 적용하기도 힘들 정도의 낮은 수준인 것으로 돼 있다.

정국혼란의 뇌관이었던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의 관련 여부에 대해선 박상천 (朴相千) 법무장관이 이미 "현재까지 증거가 없다" 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李총재의 동생 이회성 (李會晟) 씨를 조사했으나 관련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일의 정황이 이러한데도 그동안 국민회의.안기부 등 여권은 공식.비공식적으로 李총재 또는 한나라당, 이회성씨의 관련을 기정사실화하며 李총재와 야당에 대해 극단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대표적으로 국민회의 당3역회의는 李총재를 국기문란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정치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관계자들의 입에선 "李총재 국외퇴출" 이란 얘기까지 나왔었다.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정동영 (鄭東泳) 대변인은 피의자 3인에 대해 "평상시에도 사형죄에 해당하는 책임" 이라며 양형 (量刑) 까지 내렸다.

안기부는 이회성씨의 관련 여부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확증이 있다" 는 얘기를 여러차례 흘렸으며 '87년 KAL기 폭파테러' 의 진실까지도 의혹대상에 올리는 데까지 치달았다.

이같은 위험한 소동은 여권과 안기부라는 핵심기관이 국가와 정치, 공안수사를 경영해나가는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돌아간 정국의 필름을 되돌려보면 이 대목에선 긴 설명이 필요없다.

李총재와 한나라당이 세풍 (稅風)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하듯이 여권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특히 정권핵심부에 올려진 안기부의 사건보고가 부실하고 과장된 것이었다면, 그래서 지휘부의 상황오판을 유도했다면 이는 국가경영상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아울러 안기부의 과도한 정치성이 정치관여를 금지한 법에 저촉되는지도 마땅히 가려야 한다.

일이 이런 방향으로 흐르면서 "고문한 사실이 절대 없다" 는 안기부 주장도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다.

여권 지휘부는 '국민의 정부' 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도 고문시비의 진상도 빨리 가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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