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암환자 급증…60∼70년대 안전관리 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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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죽음의 섬유' 로 불리는 석면의 피해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단열재나 방화.마찰재로 아직도 선박.자동차는 물론 아파트 같은 건축물 등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석면은 제조나 사용과정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면 10~30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중피종암 (늑막이나 복막에 발생하는 암) 을 비롯, 후두암.신장암.췌장암 등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석면의 안전관리를 허술히한 결과가 이제 대규모 인명피해를 낳을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특히 석면 피해는 그동안 제조공장 근로자들에게 국한됐던 단계를 넘어 제품 사용자나 공장 주변 주민 등 생활주변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준다.

40년간 건설현장에서 일해온 임백용 (66.경남마산시월영동) 씨는 지난 5월 인제대 의대 부산백병원에서 악성 중피종암 진단을 받고 8월 중순 사망했다.

석면과의 관련성이 가장 높은 중피종암은 지금까지 산업현장에서는 석면제품을 만드는 제일화학 (94년) 과 석면제품을 많이 쓰는 조선소 (대우중공업.97년)에서 각각 1건이 보고됐을 뿐이며, 생활환경과 가까운 건설업종 종사자에게서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제대 의대 이종태 교수는 "임씨는 60년대 화력발전소 수리현장 등에서 배관공으로 석면제품을 취급하다 소량의 석면 먼지가 폐에 들어간 뒤 30여년의 잠복기를 거쳐 중피종암에 걸린 것" 이라면서 "이는 석면으로 인한 발암 피해가 석면공장 종업원뿐 아니라 석면제품을 쓰는 생활주변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음을 입증한 중요한 사례" 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석면제품을 일부 규제하고 있기는 하나 과거 석면제품 남용 시절에 이미 먼지를 마셨던 사람들에게서 피해가 대규모로 발생할 단계에 이르렀음을 경고하고 있다.

노동부 산하 산업보건연구원이 작성한 '우리나라 석면 생산.사용과 근로자수 및 노출농도의 변화' 라는 미발표 논문에 따르면 석면제품 생산업체에서 일한 근로자는 96년까지 모두 6천3백56명으로, 이중 10년 이상과 20년 이상 근무자는 각각 1천8백60명.5백61명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정근 책임연구원은 "이들 10년 이상 근무자 2천4백여명은 일단 발암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여기에 건설.조선.자동차 등 석면제품을 많이 쓰는 업종 종사자와 공장 주변 주민들까지 감안하면 잠재적 석면 발암 피해자는 수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남원 교수는 "선진국의 공해업종인 석면산업이 60~70년대 선진국에서 대거 국내에 들어왔고, 당시에는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만큼 석면으로 인한 발암 피해는 잠복기간이 웬만큼 지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 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폐암 및 중피종암 환자수는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폐암의 경우 83년 2천98건에서 96년엔 8천3백1건으로 13년새 4배나 늘어났다.

물론 석면이 폐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흡연 등 다른 요인들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잠복기간을 지난 석면 피해가 적잖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피종암도 같은 기간 12건에서 44건으로 비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취재팀이 부산 소재 부산대.인제대.고신대.동아대 등 4개 의과대학에서 중피종암 환자를 추적한 결과 96년 5명, 97년 7명이던 발생건수가 올해는 7월말까지만 8명으로 늘어나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석면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석면 사용량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지난 76년 7만4천t이 수입됐던 석면은 96년에도 7만7천t이 들어와 건축자재 등 각종 제품에 사용되고 있다.

더욱이 석면제품 공장이나 주변에 대한 안전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피해를 더욱 확산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그나마 지난 76년에야 도입된 석면 공장의 안전관리기준은 공기 ㏄당 석면 먼지수 2개로 미국 (㏄당 0.1개) 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기획취재팀 손병수.홍승일.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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