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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 쉼표 하나 잘못 찍어 20만 달러 손해보기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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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간의 이질적인 문화, 통역상의 오해, 서류 및 업무 절차의 표준화 미흡, 모니터링과 피드백 시스템의 부재 등으로 인한 실패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또 직접적인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인한 정보 왜곡이 심각하다. 쉽게 말해 현지 책임자가 현장의 분위기와 문제점을 정확히 적시에 파악하지 못해 노동쟁의가 발생하거나 생산성 저하를 초래하는 사례가 잦다.

표점부호 차이 이해 못해 분쟁 발생

필자가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기업담당관으로 일하던 시절, 잘못된 계약서 때문에 20만 달러를 손해 본 사례를 목격한 적이 있다. 중국어의 표점부호(標点符號)를 잘 몰라 일어난 대형 사고였다.

논란이 된 문구는 “中國企業负责技术转让费用100万美金,硬件费用20万美金、各种税收由韩国企业承担"이었다. 초점은 두 가지의 쉼표가 있는 데, ‘、(dunhao)’와 ‘, (douhao)’를 둘러싼 해석이었다. 한국 기업은 “기술이전 비용 100만 달러와 하드웨어 비용 20만 달러를 중국 기업이 부담하고, 나머지 각종 세금은 한국 기업이 부담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위 문장의 경우 “기술이전 비용 100만 달러만 중국 기업이 부담하고, 나머지 하드웨어 비용 20만 달러와 세금은 한국 기업이 모두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

만약 한국 기업이 원하는 취지로 문장을 쓰려면 “中國企業负责技术转让费用100万美金,硬件费用20万美金,各种税收由韩国企业承担"라고 작성하면 됐다. 결국 미묘한 부호 하나를 잘못 쓰는 바람에 20만 달러를 추가로 부담해야 했다.

용어 달라 기술교육 늦어져

톈진에 진출한 Y전자는 2000년 공장 설립 당시만 해도 각 생산단계별로 본사의 지침서를 사용했다. 한국인 생산과장이 한국어로 설명하고, 현지 조선족 직원이 통역하는 교육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조선족 직원의 통역상 오류, 한족 직원과의 마찰 때문에 생산단계별 작업라인 셋업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제3국 수출물량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사업 초기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조선족 직원의 경우 ‘저항’이나 ‘콘덴서’ 같은 외래어 명칭을 이해하지 못해 정확한 통역을 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기능직 근로자들조차도 제품 기술을 이해하지 못해 불필요한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사는 중국어와 생산기술을 두루 아는 국내 전문인력을 채용해 현지에 파견했다. 그는 조선족 직원과 한족 기술인력을 한 팀으로 하는 ‘기술교육 전담반’을 구성했다. 전담반에선 조선족 직원이 어려워하는 용어상의 문제를 한국 직원이 해결하고, 한국 직원이 어려워하는 현지 인력과의 기술 커뮤니케이션을 한족 기술직원이 도와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국인만 믿고 맡겼다 낭패

톈진에 진출한 M사는 DVR을 만들어 수출하는 업체였다. 2005년 초반 DVR 보급 바람을 타고 중국 진출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본사에선 모든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우선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인 K씨를 믿고 중국 거래처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맡겼다. 그런데 갑자기 수입상으로부터 제품에 하자가 발생했다는 클레임이 들어와 이 회사는 K씨를 파견해 보상금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고객의 클레임은 계속됐다. 본사 대표이사 A씨는 직접 중국으로 날아갔다. 이 과정에서 중국 고객을 관리하던 K씨가 클레임 명목으로 나간 보상비용을 가로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약 20억원의 손실을 본 M사는 국내에서 채용한 중국 전문인력을 중국지사로 파견해 현장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先見·正見 구비한 전문인력 갖춰야

현재 중국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R기업의 경우에는 중국진출 준비단계에서 중국 영업 전문인력을 영입해 성공적으로 내수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 덕택에 지난해부터 중국사업 매출액이 국내 본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R기업의 성공사례는 중국 시장의 특수성을 인식하고 본사가 직접 결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중국 사업의 권한과 책임을 현지 사정에 밝은 실무 전문인력에 일임한 결과였다.

이제 중국을 보고 이해하는 안목과 시각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발 앞선 창조적인 경쟁력과 한발 앞서 보는 선견(先見), 정확히 보는 정견(正見)을 구비한 전문인력을 갖추는 게 중국에서 발전하는 길이다. 중국은 말이 없다. 그냥 조용히 실익을 챙기고, 자국의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을 뿐이다.

박승찬 용인대 교수(중국경영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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