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그러는 거야? 엉? 나한테 그러는 거냐구?" 총을 뽑아들며 소리치는 청년. 그러나 상대라고는 거울 속의 자기 자신뿐이다.
뉴욕의 밤거리를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쓸어버릴 생각에 골몰한 이 사내 트래비스 (로버트 드 니로 분) 의 실상은 포르노상영관을 곧 잘 찾는 불면증 환자 택시기사일 따름이다.
영웅을 꿈꾸지만 결코 영웅이 아닌 변두리 인물의 내면을 한눈에 그려낸 '택시 드라이버' 의 이 장면은 이후 여러 영화에 되풀이됐다.
20년 뒤 프랑스 신예감독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 도 그 중에 하나. 90년대 파리 교외의 실업자청년은 거울 앞에서 70년대 뉴욕의 야간 택시기사와 꼭같은 대사를 읊는다.
'택시 드라이버' 가 비디오로 다시 나온다.
창사 75주년을 맞는 콜럼비아 트라이스타가 미국과 한국에서 재출시하는 것. 지난90년에는 국내배급사인 우일에서 출시됐었다.
76년 당시 30대 초반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 와 폴 슈레이더 (각본)가 내놓은 '택시 드라이버' 에 아카데미가 준 것은 4개부문 후보지명뿐. 이 '새로운 미국영화' 에 온전한 평가를 내린 것은 황금종려상을 준 칸영화제였다.
스콜세지의 단골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하비 카이텔이 지금과 달리 홀쭉한 체격으로 여전히 강렬한 눈빛을 내뿜는 것, 이제는 아기엄마가 된 조디 포스터가 당돌한 십대 창녀를 연기하는 것을 보는 것은 뒤늦게 만나는 고전의 색다른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