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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엄마가 만든 ‘마술피리’ 무엇이 다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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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페라 ‘마술피리’로 만난 연출자 장영아(左), 지휘자 여자경씨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3주이던 연습 기간을 한 달 반으로 늘렸다. “가족 오페라라고 해서 학예회로 만들지는 말자”는 데에 뜻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김태성 기자]

“복수와 분노가 전부일까. 지금 이 노래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모차르트가 자신의 오페라 ‘마술피리’ 무대에 직접 올라와 중얼거린다. 주인공인 타미노 왕자가 파미나 공주를 구출하려 복수를 다짐할 때, 모차르트가 무대 구석의 어두운 곳에 홀로 서 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마술피리’ 중 한 장면이다. 예술의전당은 9년째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여름마다 어린이 관객을 불러들이는 가족 오페라다.

대부분 어린이인 관객은 모차르트의 고민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연출자는 “이 작품을 유작으로 남긴 모차르트의 생각을 찬찬히 따라가보고 싶었다”며 작곡가의 무거움을 그대로 남겨두는 쪽을 택했다.

모차르트로 분한 연기자가 “나에게도 즐거운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죠”라며 쓸쓸한 표정과 함께 퇴장하고 나면, 무대 아래쪽 오케스트라 피트(pit)에 불이 켜진 후 서곡이 시작된다. 이번 공연을 위해 조직된 연합 오케스트라다.

◆9년 만의 ‘여성 복식조’=이 진지한 가족 오페라를 만든 두 인물은 가끔 ‘자매 사이’로 오인되는 동갑내기, 장영아(37·연출), 여자경(37·지휘)씨다. 여성이 드문 이 분야에서 “오페라에 대한 끔찍한 사랑 하나로 버텼다”고 입을 모으는 인물들이다. ‘여성 복식조’로 여름 오페라를 만든 것은 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여성 만의 섬세함, 부드러운 카리스마, 뭐 이렇게 쓰지 말아주세요.” 여자경씨는 오히려 손사래를 쳤다. “요새는 지휘하겠다는 여자 후배가 너무 많아요.” 그는 지난해까지 일했던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극장으로 지휘자의 길을 묻기 위해 찾아오는 후배 중 반 정도가 여성이었다고 했다. 여성 지휘자 지망생 대부분이 여씨를 찾아올 정도로, 그는 이 분야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악착같이 붙든 오페라=장영아씨는 ‘우악스러운 여자, 여성스러운 남자’가 무수하던 오페라 연출판에서 살아남았다. “액세서리나 치마 같은 것들이 금기이던 때도 있었어요.” 그는 임신했을 때도 조명·의상·분장까지 직접 챙기는 치밀함으로 입소문을 탔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다가 연출에 운명적으로 끌린 후 악착같이 직업을 붙들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아이를 낳고도 하도 집에 못 들어가니 산후 다이어트가 따로 필요없었다”는 것은 두 여성의 공통된 경험이다.

두 사람이 입모아 “여성이 만들어 작품이 부드럽다는 건 편견”이라고 강조했지만, 작품이 섬세했던 것은 사실이다. 연출가는 재미와 무게 사이에서의 잔고민을 조심스럽게 풀어놨고,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각 악기의 소리를 하나하나 이끌고 함께 가려 했다. 이 꼼꼼한 ‘마술피리’는 16일까지 계속된다.

김호정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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