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환경대란,어찌 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 아름다운 가을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난이다.

대량실업사태에 대한 제대로 된 처방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구조조정이란 이름 밑에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몇년간 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가을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난만이 아니다.

환경대란이 그것이다.

팔당호의 물이 더러워지고, 그래서 비점오염원 통제와 강안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의 완충지대 유지, 농가의 정화조 설치, 축산농가의 철저한 폐수처리…등 일련의 조처, 입법예고가 환경부에서 나왔지만 공청회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채 사라졌고, 대통령은 식수를 위한 전용댐 건설과 중수도 시설 설치라는 새로운 조처를 발표했다.

환경부의 새로운 정책제안이 괜찮은 것인데도 주민들의 물리적 힘으로 공청회가 무산됐다고 해서 다른 정책이 나온다면 정부는 너무나 '약체' 의 위엄과 권위를 갖고 있는 듯하다.

다원적인 사회에서 정책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좋은 정책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쳐 쉽게 증발해 버린다면 누가 좋은 정책을 제안하겠는가.

민주주의라는 이름 밑에 '주민들의 저항' 이 모두 정당화된다면 정부는 문을 닫아야 한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입지선정도 그렇게 무산돼 왔다.

과기처장관의 목이 달아나면서 입지선정은 '불가능한' 정책이 돼 왔다.

원자력 발전이 한국 에너지 총생산의 42%가 넘는데 방사성 폐기물은 어찌 할 것인가.

울진.안면도.굴업도… 어느 지역도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우리들 모두가 원자력의 혜택을 받고 살지만 거기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사회는 비 (非) 이성적 사회가 아닌가 묻고 싶다.

다시 방사성 폐기물 처리시설 입지선정에 들어간다는 소식은 그래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유해 (지정) 폐기물 관리에 관해서도 '요람에서 묘지까지' 일체의 법이 있다.

그러나 법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시화호 근처에 불법으로 매립한 유해.산업쓰레기들이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불법으로 매립된 폐기물은 엄청난 양일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지금까지 유해폐기물을 배출한 모든 산업체의 기록을 감사해야 한다.

그것을 사정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 기록들을 찾아가면 누가 (어느 회사) 얼마만큼의 유해폐기물을 어디에 매립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이미 사라져버린 회사도 추적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를 깨끗이 청소하게 해야 한다.

과거로 들어가 누가, 얼마만큼 불법 매립했는가를 조사 분석해 처벌.벌금을 내리는 규정은 아직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과거를 찾아나서서 오염의 범죄자를 찾아 처벌하는 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산업화과정에서 발생한 유해폐기물 매립지를 찾아서 누가, 얼마만큼 폐기물을 매립했는가 밝혀내 비용분담을 추구하고 있다.

유해폐기물 매립회사들 간에 소송이 일어나기도 한다.

매립지의 환경파괴가 위험할 정도라고 판단하면 환경청은 즉각 그 지역의 '청소 (Clean - up)' 작업에 들어가고, 그후 관련회사들에게 청소비용을 물게 한다.

이미 사라져 버린 회사의 몫은 결국 국민들의 세금부담이 되고 만다.

20세기말은 유해폐기물 청소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남몰래 버린 폴리염화비페닐 (PCB) , 한밤중에 버린 병원 쓰레기, 발암물질의 화학폐기물이 어디 시화호 근처에만 매립됐겠는가.

땅밑만이 아니다. 땅위에도 쌓여 있다.

토양.지하수.지표수.공기 오염이 가위 환경대란을 예상케 하고 있다.

유해 폐기물은 유해물질의 제조.판매.운반자, 화학기업 융자은행, 토지소유자의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요람에서 묘지까지' 유해폐기물 관리를 통제해야 한다.

인천에는 바다가 없다고들 한다.

마산만은 이미 죽은지 오래라고들 한다.

이 아름다운 나라 어디 하나 상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실업자들을 위해 조성된 8조원, 경기부양책으로 조성한 몇조원이 환경살리기에도 쓰인다면 일석이조 (一石二鳥)가 아닌가.

대통령과 정부에 제안하고 싶다.

최연홍(서울시립대 객원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