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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실 맨’으로 통했던 비주류 … “파벌·권위의식 없는 무색무취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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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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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어느 저녁 서울 서초동 서래마을의 T음식점. 청바지에 가죽 점퍼를 입고 가죽 장갑에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쓴 50대 초반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시 부산고검장이었다. 현직 고검장으로는 보기 어려웠다. 그는 “휴가 중인데 남 눈치 볼 것 없잖아”라며 자신의 독특한 차림을 설명했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는

차기 검찰총장에 내정된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 얘기다. 지난해 말은 차기 검찰총장으로 TK 출신 인사가 0순위로 거론되던 시기였다. 김 내정자는 2순위 후보군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검찰 운용에 대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그로부터 7개월 뒤 후배에게 밀려 검찰을 떠났던 그는 25일 만에 검찰총장 후보자로 친정에 복귀했다.

“세상에 알려진 큰 수사는 안 해 봤지만 창원·인천 등 공안 수요가 많은 지역의 차장검사를 지냈고 수원지검 특수부장도 했다. 나는 이것저것 다 해본 사람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한 대표적 사건은 1993년 제천지청장 때 동굴에 생기는 종유석을 몰래 잘라다 파는 조직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뒤 일망타진한 것이다. 수원지검 특수부장 때 병원 시설자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를 악용, 국가 예산을 축낸 공무원과 병원 관계자들을 대거 구속했다. 하지만 수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국제·기획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검찰 본연의 임무가 수사라고 한다면 김 후보자는 비주류에 속한다”는 평이다.

김 후보자는 ‘법무실 맨’으로 통한다. 검사 생활의 상당 기간을 법무부 법무실·국제법무과 등에서 보냈다. 90년대 중반 법무협력관으로 미국 대사관에서 3년간 파견 근무했다. 지금도 국제검사협회(IAP)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 후보자는 최근 “정치권과 경제계 등을 수사하는 것은 부패를 견제해 한 단계 업그레드하려는 것이지 권력이나 재벌이 타깃이 아니다. 검찰의 타깃은 어디까지나 범죄다”라고 말했다.

우병우 대검 중수 1과장은 그를 “서울 출신이라선지 지역색·파벌·권위의식이 없다. 무색무취하신 분”이라고 평했다. 김 후보자가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있을 때 상사로 모셨다. “당시 김 후보자가 ‘법무실의 변화전략 계획안’ 보고서를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자 천 장관이 법무부 전체 실·국의 개선 전략에 활용토록 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지방 근무 시절 색소폰·트럼펫 등 악기를 배운 것은 음대 교수였던 부친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부산고검장 때 요트를, 대전고검장 때 승마를 배웠다. 지방 미인대회의 심사위원장을 한 경력이 알려지자 비판론자들은 “현직 고위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거절했어야 했다”고 처신 문제를 지적했다. 31일에는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졌다. 92년 큰딸을 세화여중에 입학시키기 위해 집 주소를 사당동에서 반포동으로 옮겼다는 것인데 김 후보자는 이를 시인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재론될 것으로 보인다. 굴곡 없이 살아온 엘리트 검사라는 말도 나온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떼거리로 몰려 다니는 것을 싫어하고 개인 취미가 다양하다 보니 때로는 후배 검사들로부터 ‘너무 안 챙긴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단다. “앞으로 폭탄주 회식 등 검찰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김 후보자가 검찰 총수로서 지도력이 있는지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제일 먼저 천성관 사태로 덧씌워진 ‘스폰서 검사’라는 오명부터 씻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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