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인가? 오르막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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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35면

8월입니다. 한반도 전체가 사우나로 바뀌는 때입니다. 다들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대학 1학년 때 일입니다. 가톨릭 재단인 저희 학교에서 깨달음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몇몇 신부님이 10년 수도한 스님과 30년 수도한 스님을 모셨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강연이 끝나고 자유토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먼저 10년 수도한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도(道)가 뭔가요?” 10년 스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도는 바른 길이라서 속세에서 묻은 마음의 때를 닦아 내는 것이고, 마음을 맑고 밝은 구슬처럼 만드는 것이며….” 다 듣고 나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30년 수도한 스님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 도(道)가 뭔가요?” 30년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아름다운 줄 알고, 사탕을 먹으면 달콤한 줄 알며, 여름이 되면 더운 줄 알고 겨울이 되면 추운 줄 아는 것. 그것이 도입니다.”

‘철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철’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제철 과일’할 때의 ‘철’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즉 때를 안다는 뜻입니다. 섭씨 30도 조금 넘는 더위에도 ‘더워서 죽겠다’고 짜증내는 사람도 70도가 넘는 사우나에 들어가서는 ‘어~ 시원하다’고 말합니다. 그 차이는 지금의 때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지금 자신의 삶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아는 것. 나아갈 때인지 물러갈 때인지 아는 것. 고개를 쳐들 때인지 꼬리를 내릴 때인지 아는 것…. 그것이 재속 수도자(?)들의 도일 것입니다.

8월 13일은 말복(末伏)입니다. 말복은 봄에 시작된 뜨거운 기운이 차가운 기운으로 유턴을 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말복이 지나면 죽일 듯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오행(五行)에서 토(土)의 때입니다. 즉 뜨거움의 정점이고 이 정점이 지나면 뜨거움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모든 만물 속에는 각자의 시계가 있습니다. 달의 기운은 한 달을 주기로 차고 기울고, 태양의 기운은 1년을 주기로 차고 기울고, 사람의 기운은 70에서 80년을 주기로 차고 기웁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은 오르막길에 있습니까? 내리막길에 있습니까? ‘인생은 마흔부터!’라고 아무리 외쳐 봤자 마흔이 넘으면 신체적으로는 내리막길에 있습니다. 지금 내리막길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무리하다가 허리를 삐끗하는 사람은 철이 덜 든 사람입니다. 노안(老眼)이 온다는 것은 내리막길이라는 뜻입니다. 아랫사람이 하는 일을 기를 쓰고 또렷하게 보려고 하지 말고 대충 보고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인생은 때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집니다. 오르막길일 때 인생은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리막길일 때 인생은 죽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르막길의 전략과 내리막길의 전략은 달라야 합니다. 오르막길에 있다는 것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움직이는 것이 추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지는 때입니다. 모험과 도전의 때입니다. 상승 엘리베이터라는 운(運)과 에너지로 다른 사람 몫까지 책임지는 때입니다. 내리막길에 있다는 것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려가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어야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때입니다. 운동을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삶을 정리해 가면서 지금까지 키워 온 젊은 사람들에게 업혀 갈 생각을 할 때입니다. 상승 엘리베이터를 탄 젊은 사람들을 칭찬하고 존중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닙니다. 말을 앞에서 끄는 사람은 하인이고 말 등에 앉아 몰고 가는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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