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선 기차여행]아라리 가락따라 심산유곡 100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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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달력이 살금 살금 한해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간다.

차창밖으로 스치는 가을의 풍광속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노랗게 단장한 은행나무. 처절한 울음을 토하듯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에 쓸쓸히 쌓여있는 노적가리에서 가을의 서정을 읽는다.

가을로 떠나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젊은 날의 초상을 꺼내본다.

그리고 잠시 스쳐지나는 간이역에서 마주친 촌부 (村夫) 의 훈훈한 마음을 한껏 가슴에 담고 돌아오자. 오후 2시 증산역 (강원도 정선) .정선선을 타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개찰구를 향해 몰려든다.

2시15분. 정선선 (증산역~구절리역) 을 오가는 비둘기호가 1량의 객차를 매달고 출발을 알리는 기적을 울린다.

객차문은 미닫이식. 좌석배치는 지하철형. 객차내 승객은 20명 남짓. 70명이상 앉을 수 있는 객차사정을 감안하면 쓸쓸함마저 감돈다.

"정선선은 외진 마을에 사는 산골사람들에게 마을밖 또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더래요. 그러나 연간 40억원의 적자를 내 한때 폐지가 검토되기도 했지만 올들어 관광열차등으로 이용되면서 잠잠해졌더래요. " 정선군청에서 일하는 김동만 (29) 씨의 이야기다.

차창으로 눈을 돌리니 정선읍내로 흐르는 지장천이 기차와 경쟁을 하듯 정선읍내를 향해 기운차게 흘러간다.

지장천위는 나무가 빽빽한 고산준령. 푸른 나무사이로 간간이 내비치는 울긋불긋한 단풍의 물결이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기차타는 재미가 이런거 아닐까요. 시원한 물줄기에서 희망을 찾고 높은 산을 바라보면서 큰 뜻을 세울 수 있잖아요. " 정선역에서 내린다는 신춘녀 (47) 씨는 정선의 아름다운 산천에 반해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최근 정선에 눌러앉았다고 말한다.

차창밖으로는 기차길옆 옥수수밭에 대를 여러개 묶어 세워놓은 모습이 펼쳐진다.

강원 산간마을의 전형적인 '가을의 서정' 이다.

정선역을 지난 기차는 조양강을 끼고 나전을 거쳐 여량역까지 달린다.

푸른 이끼가 낀 기암괴석에 뿌리를 내리고 지나온 세월만큼 온갖 풍상을 겪었을 소나무는 한폭의 동양화로 다가온다.

나전.여량역은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 차장이 나와 차표 검사를 하며 표가 없는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차표를 발급해준다.

여량역위는 두 물줄기가 어우러진다는 '아우라지' .이곳에서 오대산 등에서 흘러온 '송천' 과 태백 검용소에서 발원해 임계를 거쳐온 '골지천' 이 만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이루지못한 남녀의 애절한 사연과 물길을 따라 객지로 나간 뗏꾼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구절리역. 증산에서 출발한 기차가 한시간동안의 여정을 끝마치는 장소다.

기차는 다시 머리를 돌린 다음 증산을 향해 출발한다.

정선 = 송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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