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경제 어려움도 설득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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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28일의 대통령 경제 특별기자회견은 추석을 앞두고 그동안 국제통화기금 (IMF) 위기와 물난리 등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국민들에게 우리 경제의 밝은 면도 부각시켜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또 정부는 최근 과감한 경기 부양책을 추진해 급격히 냉각돼 가는 실물경제를 회생시키려는 노력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있음도 고무적이다.

이번 대통령의 특별회견이 정부가 추진중인 제반 경제정책에 국민의 신뢰도를 높여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GDP) 의 90%를 차지하는 민간부문의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시키려는 충정에서 기인했으므로, 자연히 대통령과 배석했던 경제각료들이 국내 경제사정의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는 또한 그만큼 우리 경제현실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금융개혁이 마무리돼 가고 정부의 강력한 경기 부양책이 추진되고 있으니 차차 금융경색이 해소되고 경기위축도 완화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희망에는 공감할 부분이 상당히 있다.

또 예상했던대로 이번주에 미국 금리가 약간 내려갔고, 따라서 일본 엔화가치의 하락도 당분간 유보되는 등 국제 경제환경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호전되고 있다고 해석함도 이해할 만하다.

우리 실물경제의 현실이 너무도 비참하기 때문에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을 위시해 배석한 경제각료들이 자신감을 보이고 희망적인 자세를 취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일단 회견장을 떠나 정작 경제정책을 심도있게 논의하는 경제각료회의에서까지 정책담당자들이 당장의 대통령 심기평안만을 위해 서로 경쟁하듯 국내외 경제실상을 좋게만 해석해 보고한다면 이는 대통령을 기만하는 행위요, 결국 우리 경제 회복을 지연시키는 반국가적 작태임을 명심해야 한다.

3월초 하루가 다르게 악화돼 가는 인도네시아 경제위기의 실상을 확인시키고 이를 극복할 긴급대책 마련을 충고하려고 미국 정부가 특사로 보낸 먼데일 전부통령을 만난 수하르토 전대통령은 회견시간 거의 전부를 인도네시아 경제위기가 밖에서 본 것과는 달리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자기변명으로 보냈었다.

결국 수하르토는 그로부터 두달도 채 안 돼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던 비운을 당했음을 우리는 보았다.

이러한 비극은 수하르토를 보좌하던 대통령궁의 막료들과 기타 고위 각료들이 70세가 넘는 고령의 대통령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충정 (?)에서 사태를 희망적으로 좋게만 해석해 보고하고 좋지 않은 뉴스들은 차단시켰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현 위기는 실물경제의 비참한 현실을 정확하고 숨김없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그 대책을 심도있게 토의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태를 희망적으로 분석한 보고서와 좋게 나온 외신 뉴스만을 취사선택해 올린다면 이는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충성이 아니라 당장의 자기 보신을 위한 아부일 뿐이다.

측근들이 대통령에게 최근 영국의 저명한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우리나라 GDP 성장률이 올해에만 - 7~ - 8%가 예상될 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 6~ - 7%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는 불길 (?) 한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했는지 의문이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국제 경제환경 또한 갈수록 우리에게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국민은 역대 정권의 누적된 비리 결과로 초래된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물려받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밤잠 설쳐가며 노력하고 있는 대통령의 충정을 이해하고 아낌없는 협조를 보내야 한다.

이는 김대중 (金大中) 개인을 위한 것 이상으로 바로 우리들 모두와 우리 후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의 협조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자주 이번같은 경제 특별회견을 가져야 하며 다음 회견때는 대통령 자신의 경제위기 극복의 자신감뿐만 아니라 국내외 경제실상의 힘들고 어려운 점들도 분명하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진정한 협조와 희생도 간절히 요구해야 한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타계한지 이미 35년이 됐지만 그가 남기고간 "국민 여러분, 국가가 당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들이 우리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물으시오" 라는 명언은 지금도 미국 국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우리는 이 기회에 교훈삼아야 한다.

박윤식(미국 조지워싱턴대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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