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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비상대책을 정상으로” … 출구전략 워밍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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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 미국 금융위기의 파장이 국내로 확산된 지난해 10월. 대대적인 비상조치가 발동됐다. 정부는 달러 가뭄에 시달리던 은행들의 외화채무를 지급보증했다. 한국은행은 시중은행들에 직접 달러를 공급했다. 또 18개 은행장들은 중소기업에 자금 지원을 하고, 대출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세청도 중소기업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유예키로 했다.

#2. 7월 30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지금까지의 중소기업 지원은 단군 이래 가장 규모가 컸다. …하반기와 내년에는 지원이 줄 것이다.” 또 이날 금융위원회는 기업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금융회사의 부실채권도 조기에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9월과 11월엔 구조조정 대상 중소기업을 추가로 가려내기로 했다.

위기 시의 비상대책을 정상화시키는 이른바 출구전략. 정부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지만 실제로는 워밍업을 시작했다. 금리와 통화, 그리고 재정을 건드리는 ‘큰 칼’은 놔둔 채 큰 충격 없이 쓸 수 있는 ‘작은 칼’들은 속속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30일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에 총여신 대비 부실채권 비율을 연말까지 1%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6월 말 금융권 총여신 1301조원 중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은 19조6000억원이다. 은행들이 ‘1% 룰’을 지키려면 기존 부실채권 중 6조6000억원 정도를 매각하거나 손실 처리(상각)해야 한다.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하반기 새로 생기는 부실채권은 거의 전부 정리해야 비율을 맞출 수 있다.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손실로 털어내면 자기자본이 부족해진다. 정부는 이미 조성해둔 자본확충펀드로 메워주겠다는 계획이다. 한양대 하준경 교수(경제학)는 “정상화를 염두에 둔 광의의 출구전략으로 볼 수 있다”며 “그동안 충격이 클까봐 미뤘던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처리를 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그동안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으로 버텼던 기업들이 쓰러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 부실이 커지면 금융불안이 재연된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기업과 은행권의 체력을 강화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2차 위기나 출구전략 실행에 대비한 포석인 셈이다.

또 국세청은 그동안 미뤄왔던 정기 세무조사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세청 관계자는 “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기 때문에 정기 조사를 계속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엔 경기 침체로 세수가 줄어든 점도 작용했다. 정부는 올해 세수가 당초 계획에 비해 약 11조원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무조사는 덜 낸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직접적인 효과와 함께 조사를 받지 않은 기업도 알아서 성실납부를 하게 만드는 간접적인 세수 증대 효과를 낸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 통화정책 같은 큰 문제는 천천히 신중하게 결정하더라도 비상시에 마련한 특수한 정책에 대해선 선택적이고 점진적으로 정상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원배·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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