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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농법으로 교내 텃밭 가꾸며 학생들 자연·환경 소중함 깨달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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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처음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다 지렁이를 키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텃밭에 지렁이를 키우면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고 채소도 병충해 없이 잘 자랍니다. 흙 한 줌 구경하기 힘든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생생한 자연과 환경 교육을 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학생들에게 생명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싶었습니다.”

서울 명동성당 뒤에 있는 계성여고에서 교장을 맡고 있는 신점철(54·사진) 수녀의 말이다. 그는 지렁이 농법으로 작물을 키우고 쌀뜨물로 비누를 만드는 환경 동아리를 손수 지도하고 있다. 2004년 교장에 부임한 그는 이 동아리의 탄생을 주도했다. 그러던 중 2005년 학교 급식이 시작되면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골칫거리로 등장하자 학생들과 함께 고민한 끝에 지렁이 농법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자신에게 닥친 환경 문제를 학생들이 직접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었죠. 농작물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삶의 목표도 뚜렷해집니다. 무엇보다 환경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환경을 아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어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1978년 수녀가 된 신 교장은 일주일에 두 번 학생들과 함께 학교 텃밭을 가꾼다. 학교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와 학교 텃밭의 지렁이에게 먹이로 주고 농작물을 돌본다.

“도시 학생들은 먹을 게 없으면 마트에 가서 돈 주고 사면된다고 생각해요. 지렁이를 돌보고 직접 농작물을 재배해보면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죠.”

그동안 계성여고 학생과 교사는 모두 지렁이 박사가 됐다. 일부 교직원과 학생은 아예 지렁이를 집에 가져가서 화분에 넣어 기를 정도다.

환경동아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짬을 내 쌀뜨물 비누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쌀뜨물도 버리면 수질을 오염시킵니다. 학교 급식에서 나오는 쌀뜨물을 모아 비누를 만들기로 했죠.” 기름 대신 쌀뜨물 발효액을 넣어 친환경 비누를 만들었다. 비누 판매 수익금은 장학금으로 쓰인다. 신 교장은 환경동아리 학생들에게 매 학기 ‘지렁이 장학금’ ‘쌀뜨미 장학금’을 주고 있다.

“매일 학교 식당에서 학년별로 음식물 쓰레기양을 기록해 주간 통계를 냅니다. 주당 평균 5㎏ 이하가 되면 학년 전원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리기로 약속했어요. 이번에는 1학년 학생들이 해냈어요.”

신 교장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학교 건물 옥상 2곳에도 정원을 조성하고 머루와 허브 등 다양한 식물을 심었다. 학생들은 이 정원에다 ‘초록지붕’ ‘별맞이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옥상정원에 심어 놓은 머루가 잘 여물어 포도 송이만 했다. 운동장 한쪽에는 살구나무 30여 그루와 호박을 심어 놓았다. 서울 명동에서 머루와 살구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신 교장의 바람은 지금까지 계성여고가 축적한 생태 교육 노하우를 다른 학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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