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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행복도시의 불행한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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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러는 사이 서울시 면적의 절반 규모로 추진되는 세종시 건설사업은 4대 강 사업 예산과 맞먹는 돈을 잡아먹으며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누가 들어갈지도 모르고, 실은 아무도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대규모 신도시가 뚝딱뚝딱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부처가 모두 이전한다고 해도 세종시는 텅 빈 유령도시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현재 인구 50만 명을 목표로 건설 중인 신도시에 입주가 가능한 인원은 공무원 1만2000명뿐이다. 나머지 48만여 명을 무슨 수로 채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계획대로 널찍하게 부지를 조성하고 도로를 놓을 뿐이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아직 들어서지도 않은 세종시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느라 바쁘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회동 이후 세종시의 명칭을 ‘세종특별자치시’로 정하고 법적 지위를 ‘광역자치단체’로 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과거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재미를 본 전력이 있는 민주당이 찬물을 끼얹었다. 한나라당과 선진당의 보수연합 전선이 형성되는 게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시법은 이처럼 정당 간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채 표류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세종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 정신이 팔려 정작 세종시의 운명이 어찌될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선진당은 지역 민심을 내세워 ‘무조건 당초 계획대로’를 외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충청 표심을 의식해 어정쩡하게 끌려가는 형국이다. 염불은 뒷전이고 온통 잿밥에만 관심이니 아무 것도 결정되는 것이 없다.

세종시 문제는 마치 계륵과도 같은 존재다. 삼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뱉을 수도 없다. 정부부처가 이전해도 문제고, 이전하지 않아도 문제다. 지역정서와 정치적 이해가 뒤엉켜 섣불리 거론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 파국적인 재앙을 피할 수 없다.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 채 텅 빈 유령도시만 남거나, 정부 조직이 양분돼 엄청난 비효율과 혼란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딱 두 사람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행정도시 이전에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회창 총재도 16대 대선 때 행정수도 이전에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했었다. 이제 정부 분할을 중단하고 세종시를 진정한 자족도시로 바꾸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이 대통령뿐이다. 이 총재는 세종시에 관한 허황된 정치적 환상을 깨고 무엇이 충청지역에 진정으로 이익이 되는지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들의 결단이 없으면 세종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흉물로 남게 될 것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