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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끝장 보려는 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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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제8보 (131~146)]
黑.李昌鎬 9단 白.李世乭 9단

이세돌9단의 백△가 독충에 물린 듯 따끔하다. 흑이 하도 튼튼해 전혀 경계하지 않았는데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이 한수가 이창호9단의 뒤꿈치를 물어버렸다. 132에서 공격의 선봉이었던 흑▲ 한점이 졸지에 퇴로가 막막해졌다.

활짝 열린 양쪽 문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바둑돌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돌부처 이창호의 마음도 그렇게 흔들리고 있다. 아차 하는 사이 한발 깊이 들어갔고, 그 바람에 백△의 쓰라린 반격을 당하고 말았다. 이제 흑▲를 버릴 것인가, 살릴 것인가.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장고에 빠져 있다가 문득 133으로 응수를 묻는다.

이세돌은 격동하고 있다. 초장부터 끌려다닌 바둑이었는데 백△의 단 한수로 간신히 역전의 기회를 포착했다. 천하의 이창호가 걸려들었다. 그는 이 기회에 끝장을 봐야겠다고 결심한다.

134. 좌변을 외면한 채 하변으로 푹 쳐들어간 이 초강수가 격동하는 이세돌의 내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상대의 133이 조화를 부리기 전에 흑▲의 후환을 확실히 제거할 작정이다. 하지만 134는 마음만 앞선 대 무리수였다.

'참고도' 흑1, 3으로 덮어 씌워가면 백은 달아날 길이 없다. 흑에겐 A, B 등이 모두 선수여서 백은 지뢰밭을 곁에 두고 백병전을 벌이는 것과 같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이창호는 135로 한발 물러섰다. 136 때 중앙으로 뻗지 않고 또 참았다. 이 두 번의 인내와 함께 흑의 운명도 끝장이 났다. 모든 게 이세돌 뜻대로 됐다. 수비의 천재 이창호가 수비를 고집하다 무너지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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