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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년] 정몽헌 잃은 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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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4일은 정몽헌 전 현대 회장이 투신자살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다"는 그의 비극적 죽음 직후 2대에 걸친 숙원사업이던 금강산 관광은 뒤뚱거렸고, 현대그룹은 경영권 분쟁이란 심각한 후폭풍을 맞았다.

그러나 현대는 지난 1년간 그룹 추스르기에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범 8개월째인 현정은(고 정 회장의 미망인) 회장 체제도 안착하는 모습이다.

현대는 4년 만에 4일부터 사흘간 신입사원 합동수련회를 금강산에서 연다. 현대 관계자는 "왕자의 난, KCC와의 경영권 분쟁 등 4년간의 위기 상황을 넘기고 안정을 되찾았다는 상징적 의미"라고 설명했다. 현대는 18일에는 중장기 비전을 선포하는 등 그룹 재건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 예정이다.

◇고비 넘긴 경영권 분쟁=현대는 3월 30일 지주회사 격인 현대 엘리베이터 주총에서 KCC 측에 판정승을 거두었다. 현 회장은 이후 경영권 지키기에 주력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53억원을 들여 자사주 70여만주(9.9%)를 매입했고, 간판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자사주 1236만주(12%)를 우호세력인 홍콩의 허치슨왐포아사에 매각했다.

지난주에는 KCC가 법원 판결에 승복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8만주를 현대그룹에 돌려주었다. 이에 따라 현 회장 측은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지분 41.20%를 확보, 경영권 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KCC는 여전히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4.13%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아직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만큼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4일 금강산에서 열릴 정 전 회장 추모회에도 현대그룹 임직원 외에 다른 정씨 일가는 거의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재건에 나서나=현대는 상선.엘리베이터.증권.택배.현대아산.경제연구원 등 6개 계열사에 8000여명의 직원이 있다. 현대의 정신과 적통(嫡統)을 계승했다는 자부심은 대단하지만 현대차.현대중공업 등과 비교하면 재계 19위(자산기준)의 '미니그룹'이다.

그러나 주력기업인 현대상선은 갑작스러운 해운업계 호황 등에 힘입어 올 1분기에 창사 이래 최대인 1535억원의 세전이익을 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물류 자동화.주차 설비 등 비승강기 부문의 호조로 1분기에 사상 최대인 113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북사업 창구인 현대아산의 적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현대그룹의 경영이 크게 호전된 것이다.

재계 일각에선 현대가 그룹 모태인 현대건설을 인수할 것이란 소문도 나돌고 있다.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고 개성공단 개발에 박차를 가하려는 포석이란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 측은 "단지 희망사항으로, 당장은 여력이 없다"며 "외형 키우기보다 내실을 기해야 할 때"라고 선을 그었다. 주력사인 현대상선이 해운업 특성상 세계 경제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고, 현대아산은 남북관계에 따라 언제라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사업 순항할까=최근 현대의 금강산호텔 준공식에는 여야 국회의원들까지 참석했다. 또 개성공단은 연말까지 15개 국내 중소기업들이 입주해 첫 생산품을 내놓게 된다. 북한은 금강산.개성공단을 특구로 지정하는 제도 정비를 마쳤다. 대북사업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 것이다. 현대 관계자는 "돈 먹는 대북사업이 돈 버는 사업으로 탈바꿈할지 올해가 분수령"이라고 말했다.

특히 금강산 관광의 경우 지난해 육로가 개방되면서 올들어 6월까지 8만5462명의 관광객이 다녀왔다. 지난달에는 월 기준으로 최대인 3만2000여명을 기록했다. 주말에만 출발하는 1박2일 상품이 선보이고 북한도 현지에 관광가이드를 배치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년 3월까지 주기로 북측에 약속한 9억4200만달러의 금강산 관광 대가 중 아직 지불하지 못한 금액이 5억달러를 웃돈다. 현대아산은 사실상 지불 능력이 없는 상황이다. 그간 온갖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 버텨온 대북사업은 내년 봄 또 한번 기로에 설 운명이다.

이철호.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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