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정국 어디로 가나]'김윤환 처리' 사정 분수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야 모두 갈피를 못잡는 사정정국이 두개의 큰 분수령을 맞았다.

당장은 긴장을 극대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지만 일단 이 고비를 넘게 되면 정국의 지향점이 비교적 또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한나라당 김윤환 (金潤煥) 전부총재에 대한 검찰수사다.

다른 하나는 여야 수뇌부가 서로 상대방에게 요구중인 "먼저 사과하라" 는 명분론이 얽힌 다툼이다.

한나라당 金전부총재에 대한 검찰 수사는 단순히 야당 실세의원 한 사람에 대한 게 아니다.

金전부총재는 80년대 이후의 '과거 정치' 와 대구.경북의 지역성을 대표할 뿐 아니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구상하는 '동서연합' 의 향후 정계개편 구도와 맞물려 있다.

동시에 야당내 내각제론자인 그의 거취는 향후 정치권 최대 이슈가 될 내각제 개헌과도 무관치 않다.

따라서 그의 검찰 소환, 나아가 사법처리 여부 등 일련의 과정은 여권내에서도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으로 나뉘겠지만 장기적 정국 추이와 관련해 아주 주목되는 대목이다.

때문에 여권이 그의 구체적 비리내용을 흘리며 압박을 더해오자 이회창 (李會昌) 총재의 한나라당은 총력을 기울여 방어에 나서고 있다.

당초 25일로 예정된 서울역 광장 집회를 29일로 미루고, 그에 앞서 예정에도 없던 대구집회를 개최하는 것도 이런 위기감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金전부총재에 대한 검찰내사 사실이 공개되기 직전인 지난 18일 대구.경북지역 구의원 43명이 집단으로 국민회의에 입당하고 국민회의가 경북도지부를 대규모로 확충하려는 계획도 한나라당을 크게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김대중대통령이 국민회의에 입당한 권정달 (權正達.안동을).장영철 (張永喆.군위 - 칠곡) 의원에게 파격적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한나라당을 긴장시켰다.

한나라당에 몇명 남지않은 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은 "만일 허주 (김윤환 전부총재)가 사법의 족쇄에 묶이고 이수성 (李壽成) 평통자문회의부의장이 국민회의에 입당하면 이 지역 야당 의원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다" 며 절박감을 토로하고 있다.

金전부총재는 이번 검찰수사가 "같은 지역구 (구미을) 여당위원장의 엉터리 투서로 시작됐고 전혀 근거가 없는 것" 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어쨌든 이번 '소동' 을 계기로 金전부총재의 행동반경은 상당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金전부총재에 대한 처리와 함께 여야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체면을 살려가면서 '사과' 를 주고 받을지도 지금은 전혀 미지수다.

아직까지는 여야 모두 "상대방이 먼저 고개를 숙이지 않는한 어림도 없다" 며 기세가 등등하다.

한나라당은 장외투쟁 계획을 강화하고 있고 여권 역시 아직은 단호한 모습이다.

그러나 "먼저 사과하라" 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이제 싸울 만큼 싸웠다" 는 의식을 공유한 게 아니냐는 반대해석도 나온다.

한나라당에선 "이회창총재와 대선자금만 물고들어가지 않으면 의원 개개인에 대한 비리수사까지 문제삼지는 않겠다" 는 사인을 여권에 보낸 상태다.

여당 역시 사정의 편파성 시비와 국정운영 책임론에 대한 부담이 적지않다.

하지만 여야 모두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어 되돌아가는 길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종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