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글로벌 리더십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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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정이든 회사든,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그 조직이 잘되려면 올바른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특히 그 조직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것은 국가나 지구촌 전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계경제는 지난 반세기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해 7월초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이웃 인도네시아를 거쳐 우리나라로 확산됐고 최근에 와서는 러시아를 강타한 후 브라질을 위시한 남미제국과 동구권 경제로 빠르게 전염 (傳染) 되고 있다.

지금까지 아시아 외환.금융위기에 전염된 나라들은 거의가 최근에 자본시장을 개방했거나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함으로써 급변하고 있는 세계금융체제에 새롭게 편입된 나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변국가' 들의 경제위기가 현재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주요 선진경제, 특히 미국경제에까지 전염된다면 세계경제는 대공황으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놀랍게도 7년이상 장기호황을 누려온 미국경제가 최근에 와서 그 성장세 둔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주가의 불안정한 등락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지구촌의 세계인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 제2경제대국인 일본경제는 지난 80년대의 남미와 같이 '잃어버린 10년' 이란 딱지가 붙을 정도로 이미 오래 전부터 심한 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국제통화기금 (IMF) 이 1년 전에 내놓은 올해 세계경제전망치 4.25%를 그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는 2%로 하향수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연 세계경제는 대공황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

결론적으로 말해 그럴 확률은 높지 않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면한 세계경제의 위기관리는 물론이려니와 이러한 위기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세계금융체제 구축을 위해 글로벌 리더십이 아쉬운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며칠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앞으로 한달내에 세계 22개 주요국 (G22)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열고 아시아 금융위기와 세계금융체제에 관한 논의를 하자고 제의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인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얼마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나 세계인 모두가 이러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먼저 미국이 주도해 독일을 위시한 주요 선진국의 동시 금리인하가 이룩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

이것은 주변국가들의 문제가 미국경제와 여타 선진국에까지 전염되는 것을 막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현재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들의 금리부담을 줄여 이들의 외환위기 타개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일본 엔화 (貨)가치의 상대적 절상 (切上) 을 통해 이들 나라의 대 (對) 일본 수출증가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며칠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아직까지는 선진국들의 금리인하 공조 노력은 없다는 발언을 한 바 있으나 우리는 미국이 금리인하에 앞장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스펀 의장이 현재 세계가 사실상의 미국달러본위제도아래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미국의 통화.신용정책을 펼쳐줄 것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또한 클린턴 대통령이 언급한 바 있는, 현재 경제위기에 처한 아시아 제국의 부채조정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이 이른 시일내에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물론 이것은 미국 행정부가 내놓은 국제통화기금 증액에 관한 승인마저 미뤄 온 미국 의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고볼 일이다.

이와 아울러 이번 G22 회의에서는 1944년에 그 기본틀이 짜인 기존 세계금융관리체제를 금융의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보완.개편하는 구체적 방안도 논의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글로벌 리더십을 기대하는 한편, 세계경제가 대공황을 겪게 되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상당기간 저성장과 금융불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전제아래 우리는 적절한 장단기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공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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