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빚 대신 아내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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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이 독립하기 전인 1736년 보스턴 이브닝 스타지는 3월 15일자에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놓고 서로 자신의 아내라고 주장한 '기이한 사건' 을 보도했다.

그 사연은 이렇다.

남편이 다른 남자에게 15실링을 받고 아내에 대한 권리를 넘겨주기로 약속했는데 사겠다는 남자가 10실링만 주고 5실링을 내놓지 않자 분쟁이 벌어졌다는 것. 이때 두 당사자와 각기 친구인 한 남자가 나서서 사겠다는 남자에게 5실링을 꿔주어 해결됐다는 기사다.

미국땅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사건' 은 물론 19세기 후반까지 계속돼 온 영국의 아내 매매 관습에 그 뿌리를 둔 것이었다.

학자들은 그같은 비인간적 관습이 대개 8세기께 영국에서부터 시작됐으리라고 보고 있다.

노예나 가축을 사고 팔 듯 남편이 아내의 목에 밧줄을 걸고 시장으로 끌고 나와 가축 전시장에 매어놓고 경매에 부친 많은 사례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18세기 후반에는 아내를 팔겠다는 신문광고가 나기도 했다.

비슷한이야기들은 우리에게도 있다.

일제시대때 요식업으로 크게 성공한 어떤 사람의 경우. 젊었을 때 적수공권 (赤手空拳) 으로 한 음식점에 심부름꾼으로 들어간 그는 한 푼 두 푼 착실하게 모아 주인의 재산을 야금야금 잠식한 뒤 마침내 주인의 아름다운 부인까지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다.

도박으로 빼앗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길이 없다.

지구상에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정착시켰다는 영국에서 아내 매매 관습이 가장 늦게까지 존속됐다는 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런 관습이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 이란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권 (女權) 의 급속한 신장이 오히려 남성들을 위축케 하는 오늘 같은 상황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한데 빚에 시달리던 한 30대 남자는 사채해결사들의 협박에 못이겨 '빚을 갚지 못하면 아내를 양도하겠다' 는 내용의 각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오죽 궁지에 몰렸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동정심이 일기도 하지만 농담으로도 할 말이 아닌데 하물며 각서라니. 아직도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이란 고정관념이 빚은 소치다.

내 남편이 그런 고정관념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주의깊게 관찰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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