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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시간 없는 당신, 이 남자 사폰의 소설을 들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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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번엔 스페인 문학입니다. 스페인에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45)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 돋보이는 스페인 문학에서 잇달아 대히트작을 낸 작가입니다. 2005년 번역 출간된 『바람의 그림자』는 소문 없이 많은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올 여름, 인구 4억 명에 이른다는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를 만나보기 바랍니다.

천사의 게임 1·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 434·370쪽
각권 1만2000원

스페인 작가 사폰? 생소한데 이게 누구지? 책을 처음 집어들었을때의 느낌은 그거였다. 한데 곰곰이 따져보니 사폰은 고사하고 내가 아는 스페인 작가 자체가 거의 없다.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한국 번역문학 시장은 거의 미국과 일본 작가들이 점령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천사의 게임』을 펼쳐든 건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사폰이란 작가의 책이 왜 그리 선풍적 인기를 끄는지 궁금했다. 사폰이 30대 후반의 나이에 쓴 『바람의 그림자』는 전세계에서 1200만부 이상 판매됐다고 한다. 지난해 출간된 『천사의 게임』 역시 초판을 100만부 찍었고, 10개월 동안 170만부가 나갔다고 한다. 한국에선 단행본이 100만부 이상 팔린 작가 자체가 거의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도대체 사폰이 뉘길래.

그런 회의(懷疑)는 책의 첫장을 여는 순간부터 여지없이 무너진다. 2000년 역사를 지닌 스페인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 그 정경이 한장의 예술사진 혹은 한폭의 파스텔화처럼 다가오고, 낡고 오래된 도시속에서 남모를 비밀과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뚜렷이 각인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다. 하지만 일종의 추리소설이기도 하고 초현실과 현실을 넘나드는 마술같은 우화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

전세계에서 1200만 부가 팔린 전작 『바람의 그림자』에 이어 『천사의 게임』으로 잇따라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스페인 소설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두 작품 모두 책이 주요 모티브라는 공통점이 있다. [민음사 제공]

신문사 사환으로 일하는 열일곱살의 고아 다비드 마르틴. 진흙속에 묻힌 진주처럼 그에겐 빼어난 글재주가 있다. 신문사 대주주인 페드로 비달은 그의 후견인이다. 다비드에게 일자리를 주고,그가 신문에 연재소설을 쓸 수 있게 해준 것도 비달이다. 비달의 운전기사의 딸인 아름다운 크리스티나도 비슷한 처지다. 그녀가 학교를 다닐수 있게 하고 비서로 채용해준 게 비달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계층에 속한 다비드와 크리스티나는 서로를 사랑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의 삶은 결국 은인인 비달의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걸 다 갖춘 비달에게도 고통은 있다. 불후의 명작을 향한 욕망으로 열심히 소설을 쓰지만 결과는 참담하기 때문이다. 은혜를 빚지고 있는 다비드와 크리스티나. 그들은 보답할 방법을 찾아낸다. 비서인 크리스티나가 비달의 초고를 가져오면 다비드가 그걸 몰래 고쳐주는 것이다. 이렇게 출간된 책은 당장 비달을 최고 소설가 반열에 오르게 한다. 크리스티나는 다비드를 사랑하지만 은혜를 갚기 위해 비달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작가의 명성 모두를 비달에게 바친 다비드. 끊임없는 자살의 유혹에 시달리던 그에게 비밀에 가득찬 인물이 찾아와 엄청난 액수를 제시한다. 세상을 움직일, 작가의 영혼이 담긴 책을 써주는 대가다. 메피스토텔레스와 계약한 파우스트 박사처럼 다비드는 그 제안을 받아들고 모든 상황은 급변한다. 끔찍한 일들이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예측못할 결말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기 때문이다.

『천사의 게임』은 상하권으로 이뤄진 전체 8백쪽이나 되는 장편이다. 하지만 걱정은 안해도 된다. 일단 책을 펴들면 손을 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몇가지 덕목이 있다. 슬픈 사랑이라는 기본 구도위에 어처구니 없는 인간의 광기와 맹목, 현실인지 꿈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몽환성 등 쉽게 어울리지 못할 내용들이 끊임없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바르셀로나라는 오랜 도시의 뒷골목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인공들의 대화속에 느껴지는 유머와 의연함은 잔잔한 미소를 띠게 한다. 마치 폭죽이 터지듯 화려하고 충격적으로 전개되는 소설 막판의 대 반전도 장관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덕목은 역시 스페인 소설의 매력을 깨닫게 해준 것일 게다. 아, 이제 생각났다. 스페인이 이미 4백년전에 『돈키호테』를 써낸, 셰익스피어에 필적할 세계적인 문호 세르반테스를 배출했다는 사실을.

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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