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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나이스 IMF 아태국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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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휴버트 나이스 국제통화기금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본사 주최 제3회 '아시아 언론인 포럼' 참석차 지난 13일 서울을 찾았다.

본사 김정수 전문위원이 한국 경제위기, 이에 대한 IMF 처방 등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었다.

[만난사람=김정수 전문위원]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 외환위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최악의 순간은 넘겼다. 경제위기는 '안정화 - 구조조정 - 회복' 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에는 외환사정이 악화되면서 극심한 국제수지 불균형을 겪는다. 두번째는 자본유출.고금리 등으로 인해 불황이 시작된다. 동시에 은행.기업 등의 구조조정이 이 시기에 이뤄진다. 마지막이 회복단계다."

- 한국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나.

"두번째 단계다. 불황을 겪고 있고, 은행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 구조조정은 막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 회복국면에 도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가.

"그렇다. 구조조정이란 게 원래 시간이 걸리는 데다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구조조정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과잉 생산능력을 어떻게 줄이느냐, 즉 기업부문 구조조정이 가장 어렵다.

또 이와 연결된 문제로 노사문제 해결도 쉽지 않다."

- IMF가 제시한 자금지원 조건들이 너무 엄격했다는 비난이 강하다.

"비난이 제기됐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IMF가 제시한 조건이었다기보다 해당 국가가 직면한 경제적 현실이었다. 일단 금융위기에 빠지면 돈줄을 죄는 것 말고는 위기를 극복해 낼 방도가 없다. 긴축정책엔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고 위기 때 돈줄을 죄지 않으면 이자율은 폭락하고 물가는 폭등하게 돼 또다른 위기에 빠진다. 따라서 고금리와 긴축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음 국면으로 전환된 다음에는 이같은 정책을 완화해 줄 필요가 있다. 결국 금리인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하는데, 너무 신중해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성급히 금리를 떨어뜨리면 시장이 다시 불안정해진다.

한국의 경우는 무난했다. 경제가 불황국면에 접어든 단계에서는 재정적자가 늘더라도 환율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정부 지출을 늘리고 또 세금도 줄여야 한다. 구매력을 확충해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확충 방법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국채를 발행할 것인가, 아니면 중앙은행 발권력에 의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재원조달은 시장을 통해 정상적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돈을 찍어내는 방법은 피해야 한다."

- IMF 지원으로 아시아 각국에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나 투자자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피할 수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 에 관한 것이다.

"만약 한국이 IMF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국제 금융사회에서 완전히 단절됐을 것이고, 이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과거 채무불이행 상황에 직면했던 필리핀의 경우 해외 금융기관과 다시 정상적 관계를 갖는데 최소 10년 이상 걸렸다.

투자자들은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주식시장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상당부분 손실을 감수해야 하지 않았나. 채권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단기자금 상환기일의 만기연장을 골자로 하는 채무상환 재협상이 이뤄졌다. 결국 외국 투자자들도 일정한 손해를 본 셈이다."

- 말레이시아.홍콩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거래를 규제하고 고정환율제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 어떤 수준의 환율이 해당 국가에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환율을 고정할 경우 그에 따른 위험부담도 만만치 않다.

아시아 각국에 필요한 제도는 고정환율제도가 아니라 유연하고 조정이 가능한 안정된 환율제도다. 또 외환통제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말레이시아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단기적으로는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다. 투자의욕도 줄테고, 필요한 자본유입도 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또다른 환란에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IMF 자금이 고갈됐다는데.

"적어도 아시아 국가들은 자금부족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시아 각국에 3년 만기로 지원키로 확정된 자금은 이미 따로 보관돼 있다."

- 전세계적 공황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러시아가 비틀거리고 있고, 미국 증시도 불안한 모습이다. 일본도 예전같지 않고 유럽도 장기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공황의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는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튼튼하다. 유럽 경제도 회복 중이며, 일본 역시 현재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시행될 경우 내년이면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다."

- 경기회복을 목적으로 서방 선진7개국 (G7) 국가들이 이자율을 낮추는 등의 정책을 동시에 시행할 가능성은 없는가.

"과거의 경우 그같은 노력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예는 별로 없다. 정책조율이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G7 국가들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경제를 살리고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올바른 정책을 시행한다면 재도약은 이루지 못할 일도 아니다."

-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은 없는가.

"중국은 아시아 경제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이 연 6~7%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야 만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또 중국 정부 역시 자국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리 =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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