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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경기부양책에 생각할 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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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는 실물기반의 붕괴가 우려될 정도로 생산.투자 및 소비활동 등 경제전반에 초기 디플레이션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경기부양책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문제는 국제통화기금 (IMF) 과 합의됐기 때문에 정부내에서 조속시행론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부진한 내수를 보충할 수출마저 몇달째 증가세가 주춤한 것이 이같은 정책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는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재정수단보다는 통화증가를 통해 수요를 진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재정지출은 금융부문의 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을 지원하느라 여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장률 - 6%의 상황에서는 경기부양정책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당장 경기부양책을 쓸 것이냐, 혹은 구조조정을 더 진행시킨 후 상황을 고려하는 신중한 접근방법을 택하느냐를 결정하려면 사전에 몇가지 중요한 판단이 필요하다.

첫째, 국내적으로 과연 거시경기의 밑바닥을 어디로 보느냐다.

만약 지금이 최저점이고 내년 상반기중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증가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 구조조정과 병행해 경기부양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둘째, 세계경제가 과연 내년중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연착륙이 가능한지 혹은 혼미상태의 아시아.러시아.동구 및 중남미가 발목을 잡아 디플레가 만연될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한다.

셋째, 당초 환란 (換亂) 의 원인이 됐던 기업의 과다한 부채구조가 얼마나 개선됐는지와 환율의 불안정요인은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만약 통화를 증발해 금리가 단기적으로 내려간다 해도 기업의 재무구조와 외환시장이 불안정하면 늘어난 통화는 내외 조달금리의 역전 때문에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넷째, 정부와 국책 및 민간연구기관이 주장하는 반 (反) 디플레정책이 혹시 각 경제주체들에게 경제안정을 포기하고 인플레정책으로 나아가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을까를 판단해야 한다.

산업기반이 붕괴하고 자산가치가 급락해 일본같이 장기불황으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경기침체도 문제지만 실업증가로 인한 사회불안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경기부양책을 결정하기 전에 검토해야 할 요소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명확한 판단 없이 당장 급하다고 졸속 결정을 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세계경제의 회복이 불투명하고 자금경색이 해소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물가마저 흔들리면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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