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재테크]10.외국수익증권 샀다 망했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외평채 (外平債) 요? 저같으면 안합니다. " 재택구는 단호했다.

수해씨의 입이 다시 삐쭉 나왔다.

"남들은 다 좋다던데요. 이자도 국내 채권보다 1~2% 높고, 정부보증이고, 요즘처럼 달러값 오르면 환차익도 얻을 수 있고, 일석삼조 (一石三鳥) 라면서 너도나도 돈 싸들고 몰려든대요. "

"외평채는 정부가 달러 빌리려고 외국에서 달러로 발행한 국채예요. 그 말은 바로 외평채 사는 건 곧 달러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말씀이에요. 지금 달러값이 엄청 올랐어요. 언제 다시 곤두박질 할지 아무도 몰라요. 달러 떨어져 환차손 입으면 원금도 못 건질 수 있어요. 허 참, 투기는 않고 착실한 재테크만 한다더니 그새 흔들려요?"

재택구가 언성을 높이며 다그치자 수해씨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안하면 되잖아요. " "그리고 요즘 국채가 쏟아져 나오고 기업들이 달러 빛 갚으려고 회사채를 마구 발행하고 있어요. 채권시장이 매물홍수란 얘기죠. 물건은 많은데 살 사람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물건 값이 떨어지겠죠. "

"맞아요. 채권값이 떨어져요. 그 말은 바로 채권을 팔려는 쪽에서 사는 사람에게 더 높은 이자를 줘야 한다는 뜻이지요. 회사채 수익률이 요즘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것도 그래서예요. 조만간 외평채보다 회사채 수익률이 더 높아질 거예요. "

"채권 수익률이 얼마나 오를 건데요?" "지금봐서는 약 연 15%대까지는 곧장 올라갈 것 같아요. 지금 외평채 투자보다는 차라리 그때 채권투자를 하는게 낫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수해씨의 눈에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재택구 이사람, 언제 뭘 물어봐도 똑 소리나게 대답해준단 말야. 그 때였다.

객장이 떠나갈듯이 재택구를 찾는 중년 부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선불맞은 황소처럼 씩씩대며 들어선 것은 복부인 복여사였다.

"아니, 엄마가 여기 웬일이세요? 그리고,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수해씨는 휘둥그런 표정으로 복여사와 재택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슨 영문이냐는 듯이. "그러는 너는 웬일이니. 처녀 때부터 만나지 말랬더니, 애 엄마되고 나서도 찾아다녀?" . "죄송합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 제탓입니다. "

"흥 - 죄송? 말로만, 말로만 죄송하다면 그만이야? 말해봐,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에이구, 애당초 네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 수해씨가 두사람을 진정시키고 일의 전말을 물었다.

사연인즉 복여사가 달러에 10억원을 투자해서 50일만에 1억2천7백만원을 날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재택구가 판단착오를 했고 그게 곧바로 큰 손실로 이어졌다는 점이고.

복여사의 말. '내가 달러투자를 좀 해보려고 지난 7월22일 1천2백93원에 메릴린치 수익증권을 샀지뭐냐. 글로벌 분산형펀드라나 뭐라나 절대 안전하고 그중 수익률도 높다는 저 녀석 말을 믿고. 그런데 그게 폭삭 망한 거야. 내 예상대로 달러값은 1달러당 60원이 넘게 올랐는데도. 이유는 하나야, 저놈이 남의 돈이라고 제대로 관리를 안해줘서지. '

"야, 아무리 바보라도 천번 생각하면 하나 얻는 게 있다더라 (愚者千慮면 必有一得) .그래 평생을 재테크 하나로 밥먹고 살아왔다며 그래, 바보만도 못해?" 재택구의 변명.

'복여사가 달러 투자를 할 때라며 은행 외화예금과 증권.투신사 외국 수익증권을 비교해 달라고 했죠. 은행만큼 수수료를 많이 떼지 않는데다 수익률도 연 12% 정도는 보장되는 외국 수익증권이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가장 안전하고 수익율도 괜찮은 유럽 공사채형 펀드를 추천했죠. 그러나 그게 첫번째 잘못이었어요.

러시아 사태로 물려들어간 유럽 채권.주식은 폭락했고 복여사가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은 한달도 못돼 마이너스 13%까지 떨어졌어요. 더 큰 불찰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펀드 수익률을 한번도 체크하지 않은 것이죠. 매일매일 펀드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저는 한달이 넘도록 그걸 몰랐어요. 단말기를 한번 두드려보기만 해도 알수 있던 것을, 과거 늘 괜찮았던 펀드니 방심한거죠. 계속 괜찮을 거라고.

복여사의 예상대로 달러값은 올랐죠. 그러나 10억원을 달러당 1천2백93원에 바꿔 77만4천5백90달러였던 복여사의 펀드자산은 50일만에 66만1천1백20달러로 줄었어요. 같은 기간 달러값 오른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손해가 난 거죠. '

복여사는 얘기 중간중간마다 길길이 뛰었다.

위험을 사전에 충분히 알려주지 않은데다 매일 자신의 재산가치가 폭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그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으니 이는 명백히 대박증권사 책임이라는 주장이었다.

자기 돈 같으면 50일씩이나 투자수익률을 체크 한번 안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고도 '고객 돈을 내돈처럼' 관리해준다는 뻔뻔스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얘기가 이 대목에 이르자 재택구로선 유구무언 (有口無言) 이었다.

수해씨가 중재에 나섰다.

결국 재택구에겐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복여사 원금에서 손해난 1억2천만원을 그 기간내 최선을 다해 복구해주기로. 그러나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복여사를 돌려보낸 뒤에도 재택구의 근심은 끊이지 않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