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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경영진 잦은 마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계열사인 A사가 어려운데 그룹 차원에서 자금을 지원해줘야 한다 " "그랬다가 손실이 나면 주주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안된다" - .

대기업 사외이사인 朴모 (51) 씨 등 3명의 사외이사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 여부를 둘러싸고 경영진과 팽팽히 맞섰다.

회사 경영진은 "A사가 부도날 경우 그룹 전체가 타격 받는다" 는 주장을 폈으나 朴씨 등은 끝내 거부, 지원은 무산됐다.

이날 이후 朴씨 등은 열흘마다 자신에게 보고되는 회사 회계장부를 더욱 꼼꼼히 살펴보는 등 '감시' 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당연히 회사 경영진과는 껄끄러운 관계가 됐다.

대기업 B사의 사외이사인 金모 (47) 교수도 요즘 매우 입장이 곤혹스럽다.

최근 각종 사내의 고급 정보가 유출되자 자신에게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 金교수는 "회사측이 사외이사를 의심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존재가 거북하기 때문" 이라며 "일부 업체에선 사외이사가 요구한 자금관련 자료를 경영진이 거부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고 말했다.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지난 2월 도입된 사외이사제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곳곳에서 경영진과 사외이사간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경영인.변호사.세무사.연구원.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사외이사는 현재 모두 6백개 상장사에 7백69명.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올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가 사임한 경우가 이미 20여건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쟁점 = 사외이사들은 '감시자' 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점검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기업측에서는 '너무 원론만 고집한다' 는 것이다.

S기업 사외이사인 한양대 김대식 (金大植) 교수는 "사외이사 관련규정이나 상법에는 주주의 이해가 침해당할 경우 심지어 사외이사의 재산까지 날리게 돼 있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감을 갖고 꼼꼼히 챙기지 않을 수 없다" 고 말했다.

반면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는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기업경영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경영현실을 무시한 채 교과서대로 자신들의 권한만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며 "이들이 이사회에서 원론적인 논쟁을 하는 바람에 회의시간이 무작정 길어지는 등 어려움이 있다" 고 말했다.

◇개선안 = 연세대 박흥수 (朴興洙) 교수는 "각종 문제점을 상법이나 회사정관을 고쳐 당장 해결하기는 어렵다" 며 "재무.경영 등 전문분야별로 사외이사와 일반이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특별위원회' 를 구성해 의견을 조정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고려대 장하성 (張夏成) 교수는 "소액주주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등 이 제도를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SK텔레콤처럼 우선 기업들이 정관을 개정해 사외이사의 역할과 권한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야 하며 무엇보다 경영진이 이 제도를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미국.영국의 사외이사제도는 기업의 경영실적 평가와 중장기전략 수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우리는 부당 내부거래와 대주주 (오너) 의 전횡을 감시하는 역할에 더 비중을 두고 있어 이같은 불협화음은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절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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