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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문제 다룬 소설 펴낸 이건영 전 건설부 차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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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영삼 정부 시절 건설부 차관 등을 지내며 굵직한 국토개발 사업에 관여했던 이건영(64·사진)씨가 장편소설 『마지막 인사』(휴먼앤북스)를 펴냈다. 서울대 법대 64학번인 이씨는 스무 살이던 1965년 근친상간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다룬 장편소설 『회전목마』가 한국일보 장편 공모에서 당선되며 일약 이름 석 자를 알렸다. 당시 집 한 채 값이라는 거액의 상금도 상금이었지만 신문에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때문에 아직도 이씨를 소설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이번 소설 출간은 말하자면 수구초심, 젊은 시절 이씨로 하여금 열병을 앓게 했던 ‘본업’으로 돌아간 것이다.

소설은 안락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인 안락사는 산소 호흡기 등을 떼 환자의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와는 구분된다. 주인공은 말기 간암 판정을 받은 오십대 중반의 신경외과 전문의 정진호. 그는 뇌종양에 걸린 아내가 뱃속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뇌수술을 받아 스스로 식물인간을 택하자 마취제를 투여해 생을 마감케 한 경험이 있다. 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에도 안락사를 여러 차례 도운 정진호는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본인의 마지막도 약물로 목숨을 끊는 방법을 택한다. 소설에서는 병원 수술실 장면이 특히 실감나게 그려진다.

이씨는 20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존엄사와 안락사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인위적으로 생명활동을 중단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은 게 아닌가 한다”며 “우리 모두의 문제인 만큼 소설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의학의 발달로 사람들의 수명은 점점 늘어나는데 생명을 자꾸 연장하는 게 좋기만 한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죽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씨가 소설 속에서 안락사에 대한 분명한 찬·반 논리를 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내가 연명 치료를 받는 상황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겁난다”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존엄사를 선택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70년대 초반 소설 쓰기를 그만뒀다. 그 뒤로 건설부 차관·국토개발연구원장 등을 지내며 경부고속철도, 분당·일산 신도시,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 등에 관여했다.

소설을 갑작스레 중단한 이유에 대해 이씨는 “최인호씨처럼 잘 쓰지 못한다면 밥 먹고 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40년 가까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소설을 읽어왔다”며 “앞으로는 계속 쓸 생각”이라고 했다. 이씨는 “환경 문제를 다룬 장편을 써놓았고 요즘은 가톨릭 박해사를 다룬 작품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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