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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노래하는 주부 ‘천안카수’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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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여성 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정현옥씨가 트로피와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조영회 기자]

‘신비로운 너의 모습 / 나에는 사랑인 걸 / 조금씩 다가오는 널 느낄수록~’

가수 정경화의 노래 ‘나에게로의 초대’다. 천안시 성환읍에 사는 정현옥(32)씨는 이 노래로 생애 큰 기쁨을 맛봤다. 15일 열린 제7회 천안시여성대회 기념 ‘천안여성 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이 노래는 평소 좋아했지만 출전 곡으로 정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정씨는 이달 초 어느 날 노래자랑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꿈을 꿨다. 그런데 다음날 앞 집에 사는 동생이 “언니 천안에서 노래자랑을 하는 데 한 번 나가볼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정씨는 순간 전날 꿈이 생각났다. “그래 노래자랑에 나가라는 뜻인가 보다.” 바로 출전을 결정했다.

노래는 꿈속의 노래와 같은 곡으로 정했다. 그는 “꿈속에선 ‘가사만 틀리지 말자’며 대충 불렀던 것 같다. 진짜 노래자랑에 나간다고 생각하니 욕심이 나 연습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이 노래는 ‘노래 좀 한다’ 는 사람도 부르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는 노래자랑에서 이 곡의 매력인 저음과 떨림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천안시민회관 무대 뒤에서 만난 정씨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참가자 9명 중 3번째로 무대 위에 오른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껏 실력을 뽐냈다. “사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런데 1절을 부르고 나니 안도감이 들었고 그때부턴 즐기자는 생각으로 불렀다”고 했다. 노래하는 중간중간 응원 온 가족·친구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무대 매너까지 유명가수 못지 않았다. 남편(39)과 아들(6), 딸(4)을 비롯해 친정부모, 동네 친구들이 응원을 왔다. 그들은 열창하는 정씨에게 환호를 보냈다. 친정 아버지는 핸드폰 카메라의 작은 화면에 딸의 모습을 담느라 분주했다. 어린 두 자녀도 엄마가 노래 부를 때 만큼은 무대를 응시했다.

다른 청중들까지 그의 노래에 매료된듯 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사회자도 “어떻게 이런 끼를 숨기고 애들만 키우고 있었냐”며 놀라워 했다. 그는 대학생 참가자를 제외하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젊은 참가자였다. 노래자랑은 예선에 30명이 지원했고 본선에는 9명이 진출했다. 본선 진출자는 70대 할머니, 50대 주부, 20대 여대생 등 다양했다. 모두들 동네에선 내로라하는 노래꾼들이었다. 그러나 대상 트로피와 부상(30만원 상당의 재래시장 상품권)은 정씨 차지가 됐다.

그도 예상치 못한 상에 순간 놀랐다. 그는 “기대 이상의 상을 받았다. 누가 권하지 않았다면 못했을 것”이라며 “참가를 도와준 동생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딸 응원을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친정아버지 정종현(62·서산시)씨는 “딸이 어릴 적부터 노래를 워낙 잘했는데 오늘 보니 더 기특하고 너무 예쁘다”며 기뻐했다.

정씨는 고등학교 때 두 번, 직장생활 하면서 한 번 노래자랑에 나간 적이 있다. 노래를 잘한다는 말은 자주 들었다. 본인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를 기회는 없었다. 이번 노래자랑 때문에 10여 일간 원없이 노래를 불렀다. 집에서도 부르고 노래방도 가서도 불렀다. 같은 아파트의 동생·친구·언니들이 청중·매니저 역할을 했다. 반주CD를 준비해와 연습시키는가 하면 노래방에도 데리고 가 ‘실전 훈련’을 하게 했다. “극성 친구들 덕에 우승한 것 같다”는 정씨는 “대회를 위한 노래 연습이긴 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며느리 출산 축하하려고 출전
20대 여성 “남친이 등 떠밀어…”

60대의 나이에도 화려한 무대매너를 선보인 강규임씨

15일 오후 4시 천안여성 노래자랑이 열린 신부동 시민문화회관 대강당. 긴장과 초조함이 흐르던 무대 뒤에서 참가자들을 만났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대화를 나누고 물을 나눠 마시며 무대에 오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는 강규임(64·안서동)씨, “며느리의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가재은(56·풍세면)씨, “갱년기의 우울증을 노래를 배워 극복한 지금은 행복하다”는 김길녀(51·쌍용동)씨 등.

“처음에 내가 잘못 참가했나” 생각했다는 참가번호 2번 전지현(23·봉명동)씨. 노래자랑 참가자 중 가장 어렸다. 50대 엄마부터 70대 할머니까지 연령의 차이가 커 예선부터 놀랐다고 한다. 전씨는 남자친구가 신청서를 내 참가했다고 했다. 이렇듯 등 떠밀려 나온 그는 “요즘 몸이 아픈 엄마에게 기쁨을 드리고 싶어요. 엄마는 ‘항상 공부나 잘 하라’고 하지만 수상하면 좋아하시지 않을까요”라며 밝게 웃었다.

가수 강진씨와 함께 열창을 하는 조금숙씨.

가장 나이가 많은 참가자인 조금숙(77·원성동)씨는 나이 보다 젊어 보였다. 노래자랑도 직접 신청했다고 했다. 조씨는 “노래가 너무 좋아 참가했는데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까 더 좋다”고 말했다. 조씨는 평소 팬인 가수 강진의 ‘삼각관계’를 불렀다. 이날 조씨는 다른 어떤 참가자들보다 잊지 못할 추억꺼리를 만들었다. 마침 노래자랑 초대가수였던 강진씨와 무대에 함께 올랐기 때문이다. 조씨는 강진씨와 함께 ‘삼각관계’를 불러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글=백경미 인턴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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