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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반나절 행복] 청담동 도산공원과 카페 '가배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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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병보석으로 출옥한 것은 1937년 12월 24일,

병이 악화돼 세상을 뜬 것은 이듬해 3월 10일이었다. 그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장례식도 없이 쓸쓸하게 묻혔다.

도산공원(左) 안에 68년 미국에서 사망한 부인 이혜련 여사와 함께 두 분의 합장 묘가 생긴 것은 73년이다. 공원도 그해 문을 열었다.

묘소 앞에는 늙은 배롱나무가 대여섯 그루 서 있다. 은은하고 기품있는 꽃이다. 꽃이 한창이어도 화사하기보다는 왠지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반면 공원 입구에 푸른 잎을 너울대는 건 싱그러운 젊은 느티나무다. 이 느티나무 아래 도산순환길이라 이름 붙은 산책로가 놓였다. 이곳은 바람이 아주 기막히게 잘 분다. 느티나무 잎새에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걸어보라. 공원 가운데 도산 선생의 묘지를 지나 오른쪽은 산책로이고, 왼쪽은 건강지압길이다. 여기는 검은 냇돌을 총총 박아놨다. 이 길 100m를 발 벗고 걸으면서 내 몸의 경혈을 섬세하게 감지한다면, 빗돌에 새겨진 도산의 말씀을 선입견 없이 음미한다면, 당신의 반나절은 그리 어렵지 않게 행복해질 것이다.

아이들과 동행하거든, 아니 어른들끼리라도 입구의 도산기념관에 잠깐 들러보자. 역사 교과서에서나 거론되는 인물이 아닌 실제 나라의 장래를 고민하던 한 인간의 이타적인 삶의 방식을 만날 것이다. 도산공원은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공원 관람기나 도산 관련 독서감상문을 모집 중이다(문의 541-1800. 9월 15일까지).

도산공원 앞길은 도산가족이 처음 정착했던 도시 이름을 따 리버사이드 로드란 이름이 붙었다. 이 거리엔 눈에 띄는 찻집이 몇 있다. 정문 바로 앞 '느리게 걷기'(515-8255)는 천장이 높고 앞문이 거리를 향해 활짝 열리고 실내가 넓어 눈맛이 시원하다.

이곳이 붐비거든 청담동 뒷길을 십여분 걸어 '가배 미학'((右).3444-0770)을 찾자. 커피맛이 최고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집이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장빈숙자씨는 커피광이었다. 서울에 오면 먹을 만한 커피가 없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러다 직접 간판을 건 지 7년. 그동안 콩에서 나온 기름기로 나무기둥은 검어졌고, 애호가 그룹도 생겨났다.

이곳은 한주일에 두번 콩을 볶는다. 손님이 주문하면 원산지와 주문한 농도에 따라 사흘 전(사흘된 콩이 가장 향기롭다)에 볶은 콩을 즉석에서 갈아 사이펀을 쓰지 않고 페이퍼 드립 방식만 고집해 손으로 한잔씩 뽑는다. 그러니 여기서 리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인은 맛에 대한 자부심이 거의 도도할 지경이다.

다른 집에서 구하지 못하는 희귀종도 여럿 있다. 한해 스무 부대밖에 생산되지 않는다는 무농약 커피, 입에 대면 풋사과향이 확 끼친다는 예멘커피 등 특별 커피는 1만원. '오늘의 권장 커피'는 1000원 할인해 7000원. 너무 비싼 게 흠이라고 찜찜해 했더니 커피 한잔 만들기까지의 전과정을 생각해 보라며 주인은 샐쭉해진다. 참고로 카운터 왼쪽 앞자리가 그라인딩 기계에서 풍기는 커피향을 실컷 음미할 수 있어 최상. 매주 수요일엔 배전과 축출의 전과정에 참여하는 커피학교가 열린다. 참가비는 2만원.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사진=최승식 기자<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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