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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웰빙] 갠지스의 태양을 삼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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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닉 푸드(ethnic food)란
사전적 의미론 '민속음식'이지만 주로 인도.태국.베트남 등 제3세계의 전통 요리를 말한다.

창 밖을 보곤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거리로 나설 용기가 생기질 않았다. '옷가지나 빨아 말리며 하루쯤 게으름을 피워볼까?' 창가와 침대 사이를 오가며 망설이기를 여러 번. 결국 마음을 다잡고 창 넓은 모자와 긴 옷으로 무장했다.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운동화 끈도 다시 질끈 묶었다.

호텔 문을 나서자 나를 태워 버릴 듯이 이글대는 불볕과 오토 릭샤(auto-rickshaw.오토바이를 개량한 인력거)의 빵빵거리는 소음에 숨이 확 막혔다. 찬드니 촉의 시장 골목은 짐을 실어 나르는 릭샤와 사람들이 엉겨 거대한 '폭염'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매번 매혹적인 향신료 향에 취하고 이름 모를 채소의 풋풋함에 넋을 빼앗겼던 시장 구경이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선 오히려 견디기 힘든 고행길이었다. 머리 밑에서부터 흐르는 땀이 목과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타는 듯한 갈증을 물리치느라 윤종신의 '팥빙수'도 애타게 불러 봤건만 입은 더 말랐다.

그러다 운 좋게 만난 길거리 라시(lassi.요구르트로 만든 인도의 전통 음료)가게에서 찬 라시 한 잔에 목을 축이며 잠시 숨을 골랐다.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인도 사람들에 섞여 카메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순간들을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담았다.

끓이고 튀기고 볶고 조리고 굽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인도의 길거리 음식. 언뜻 보기엔 꾸밈이 없어 소박해 보이지만 종류는 화려했다. 활기차면서도 넉넉함이 넘쳐났다.

끓는 기름에 넣자마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빵 '퓨리', 팬에 앞뒤로 몇 번 뒤집으니 순식간에 구워지는 넓적한 빵 '차파티'. 그것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손놀림과 조리과정은 현란한 쇼였다.

줄지어 있는 거리 음식점 중에서 카레향이 좋은 집을 고르기 위해 코를 킁킁거리며 한참을 기웃거렸다. 카레가 뭉글뭉글 끓고 있는 커다란 솥이 여러 개 내걸려 있고, 그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잇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서너 명이 앉을 만한 나무 의자가 두 개 있을 뿐 모두 선 채 식사 중이었다. 서서 먹는 무리에 섞여 볼 생각으로 긴 줄의 끝에 섰다. 차례가 되어 사라수 나뭇잎 접시에 퓨리 1개와 차파티 1개를 먼저 받았다. 모두들 오른쪽 카레를 주문하기에 나도 그러겠다고 했다. 아저씨는 힐끗 쳐다보며 한 국자를 듬뿍 퍼 줬다.

향이 어찌나 좋은지 입안 가득 침이 고이며 눈이 절로 스르르 감겼다. 흡족한 마음에 차파티 한 쪽을 떼어 카레에 듬뿍 적셔 입에 넣었다. 순간 거대한 불덩이가 굴러 들어온 것 같았다. 귀가 아프고 왼쪽 머리까지 욱신거렸다.

카레를 퍼 주던 아저씨의 표정이 '너 이거 못 먹을 건데, 어쩌나… 매운 맛 좀 보겠군'이란 뜻인 걸 그제야 알았다.

'타는 듯한 뙤약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불덩어리를 먹고 있다니…. 불가마에 앉아 고추장 찍은 청양고추를 먹으면 이런 맛일까?'

재채기가 나고 눈물.콧물이 흐르더니 구슬 같은 땀방울이 카레 위로 뚝뚝 떨어진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니 지저분한 내 모습과 달리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로 매운 맛을 흡족하게 즐기는 것 같았다. 지독히 매운데도 자꾸 손이 갔다. 바삭바삭한 퓨리와 거친 차파티가 카레의 매운 맛을 번갈아가며 달래줬다. 먹다 보니 퓨리와 차파티, 그리고 지독히 매운 카레도 알뜰하게 싹싹 비웠다.

호텔로 돌아오는 오토 릭샤를 탔다. 얼굴로 달려들던 그 뜨끈뜨끈했던 바람이 산들바람으로 느껴졌다.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도 부드럽게 와 닿았다. 지독히 매운 맛을 봤더니 세상이 확 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매운 맛이 남아 귀에선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입 안은 마취된 듯 얼얼했다.

글=백지원 (에스닉 푸드 전문가) <bjwon9113@hanmail.net>
사진=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 매운 새우커리 만들기

■ 요리 시간= 30분 ■ 난이도=하

■ 재료=새우(중간 크기) 20마리, 버터 1 큰술, 올리브 오일 3 큰술, 다진양파 1개분, 다진 마늘 1 큰술, 커리가루 3 큰술, 다진 청양고추 2개분, 우유 1컵, 소금 2 작은술, 설탕 2 작은술

■ 만들기=새우는 꼬치로 등 둘째마디의 내장을 제거하고 껍질째 씻어 둔다. 팬을 달군 뒤 버터와 올리브 오일을 넣고 양파와 마늘을 연한 갈색이 되도록 볶는다. 커리가루와 청양고추를 넣고 향이 나게 볶는다. 새우를 넣고 분홍색이 살짝 나도록 볶은 뒤 우유를 붓고 한바탕 끓여 소금과 설탕으로 간한다.

*** 이렇게 하면 더 맛있어요

(1) 커리와 청양고추의 양을 가감하여 매운 정도를 조절하세요.

(2) 우유 대신 요구르트.코코넛 밀크.생크림을 넣어 맛의 변화를 즐기세요.

(3) 어린이를 위해서는 청양고추 대신 바나나(1개) 또는 사과(1/2개)와 파인애플 통조림(1쪽)을 곱게 다져 넣고 만들어 주세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리가 됩니다.

(4) 새우 외에도 닭고기나 생선.야채로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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