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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명동 - 유행은 가도 낭만은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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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유행의 거리’라는 자존심을 압구정동에 내줬던 명동. 요즘은 다시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명동은 '패션 1번지'였다. 일제시대 일본인 상가의 중심이 되면서 서구 문물의 창구 역할을 해온 것이 크게 작용했다. 1960년대 이후 미니스커트.핫팬츠.판탈롱 등 첨단 유행의 시발점이었고, 앙드레 김.쎄실.미스 박테일러 등 패션의 산실도 이곳에 터를 잡았다.

"60~70년대 명동엔 양산 쓰고 흰 원피스를 입은 멋쟁이 여성들이 넘쳐났어요."

36년째 명품수선점 '명동사'를 운영하는 김동주(61)씨의 회고다. 외국 패션잡지로 눈요기나 하던 발렌티노.구찌.이브생로랑 등도 등장했으나 문제는 이들이 착용한 상당수 명품이 가짜였던 것.

"미국에 사는 아들이 보내준 거라면서 고쳐달라는데 어떻게 곧이곧대로 얘기하겠어요. '좋은 물건 쓰시네요'라며 그저 말끔하게 손봐드려야죠." 김씨의 회고다.

명동은 또 '낭만 1번지'이기도 했다. 국립극장을 중심으로 연극인들이 모여들었고 길 하나 건너면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충무로 영화가로 이어졌다. 70년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통기타 문화도 명동에서 꽃을 피웠다. 69년 '오비스 캐빈'을 시작으로 70년 코스모스 백화점 건너편에 '금수강산'이 들어섰고, 70년대 중반 '쉘부르'가 문을 열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송창식.윤형주.양희은.서유석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죠. 생맥주 맛도 기가 막혔고. 여기서 노래 부르면 바로 스타가 되는 걸로 생각하던 때였으니까요."

화려함을 좇는 불나방처럼 돈과 주먹도 명동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영업한 '삼성 이발관'의 정정웅(52)씨가 전하는 뒷골목 얘기.

"75년 새해 벽두 호남파가 사보이 호텔 커피숍에서 신년회를 하던 명동파를 기습했을 땐 비명에 명동 일대가 공포에 떨었죠."

명동이 과거만큼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는 까닭도 정씨는 돈줄이 끊긴 탓으로 분석했다.

"증권거래소가 79년 이곳을 떠나면서 금융의 중심이 여의도로 옮겨갔잖아요. 게다가 금융실명제로 사채시장도 큰 타격을 입었죠."

이제 명동은 20년간의 침체를 벗고 변신을 꿈꾸는 중이다. 40~50대 중장년들이 떠난 자리에 밀리오레와 복합 쇼핑몰 등 중저가 매장들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을 손짓하고 있다. 명동상가번영회 관계자는 "2000년 명동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일본.중국인 관광객이 뚜렷이 늘었다"며 새로운 도약을 낙관했다.

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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