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참정권 또 무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다음 달 30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할 가능성이 큰 민주당이 선거공약(매니페스토)에 일본 거주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간사장은 18일 미에(三重)현 욧카이치(四日市)시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나를 포함해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 등은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당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이달 말 발표될 총선 공약에 이 문제를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이 문제를 외국인 참정권에 반대하고 있는 자민당과 차별화하기 위한 정치이슈로 삼아왔다. 1998년 당 결성 시 영주 외국인들의 지방참정권 문제를 당 기본정책으로 명기했다.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열도는 일본인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영주 외국인들은 세금도 내고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다”는 파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외국인 참정권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오자와 전 대표도 지난해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특사자격으로 방일한 이상득 의원에게 “(외국인 참정권에)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찬성이다. 빨리 논의를 거쳐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던 민주당 집행부가 이 문제를 공약에서 제외키로 한 것은 다음 달 총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승리가 유력시되고 있는 가운데 논란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참정권은 어디까지나 귀화해 일본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는 당내 보수파들과의 의견조율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 83만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47만여 명이 재일동포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은 15년 넘게 일본 정부에 재일 영주 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을 허용하라고 요구해 왔다.

민단은 지난해 연말 도쿄에서 열린 민단중앙본부 회의에 오자와 전 대표를 초대하는 등 민주당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총선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외국 사례=영국 출신의 일본 경제·사상사 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그의 저서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묻는다』(2005년)에서 유럽의 외국인 참정권 사례를 폭넓게 소개했다. 스웨덴의 경우 인구 850만 명의 5%인 40만 명이 핀란드 사람이다. 핀란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스웨덴이 핀란드를 오랫동안 지배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정부는 1976년부터 자국 내 외국인들에게 도의회, 시의회의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스즈키는 “일본이 다원화하고 있지만 아직 어리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외국인의 참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아일랜드, 뉴질랜드는 모든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인정하고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많은 나라가 조건을 갖춘 영주권자에게 이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