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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허민 '여수 (旅愁)' 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산비둘기처럼 두려움을 한가닥 지니고

낯선 산천을 굽이 돌아나가면

흔한 인정치고 하나나 반겨주는 이 없고

머무는 곳마다 맘은 수줍어 머리를 숙

이었노라

어린 시절에 품었던 대동강을 벌써 보

내고

사투리 다른 곁에 손이 창을 들여다보네

산도 고울세라 들도 사랑할세라 가을

저무는 날!

멀어지는 고향 멀어지는 사람 아아 생

각지도 말자

- 허민 '여수 (旅愁)' 중

허민 (許民.1914~1943) 은 누구인가.

한국 현대문학사는 이런 시인 하나를 온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가 윤동주가 아니라는 이유였을까. 1930년대 이태준 주재의 '문장' 지를 통해 시와 소설로 세상에 나왔으나 그림자 같은 불운과 허약한 몸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그 자취 온데간데 없어졌다.

과연 형용사의 나라에서 형용사가 신들려 춤추는 것이 그의 시이기도 하다.

경남 사천 곤양의 외가에서 태어난 이래 개가한 어머니 따라 해인사 산중에서 시인이 됐다.

한 시인을 잃어버리는 이 세상이 세상답기도 하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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