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기 박사 배종옥, 이젠 언론학 박사예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 4년 동안 학업과 연기활동을 병행하느라 힘들었다”는 배종옥씨는 “언론학 박사과정 공부를 통해 드라마를 보는 넓은 시선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탤런트 배종옥(46)씨가 배우 출신 박사 1호가 됐다. 고려대 언론학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아온 배씨는 최근 ‘텔리비전 드라마 게시판 반응과 제작구성원의 상호작용 연구’로 논문심사를 통과했다. 개그맨 이윤석씨가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가수 하춘화씨가 3년 전 51세의 나이에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배우로는 배씨가 처음이다.

배종옥씨의 논문은 자신이 출연한 MBC 주말 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의 사례를 중심으로 했다. 배우가 자신의 출연작을 소재로 드라마 제작과정에 대한 논문을 쓴 것 또한 처음이다. 배씨는 실제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논문을 위한 자료수집과 제작진 인터뷰를 병행했다고 밝혔다.

“논문을 마치고 나니까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러네요. 제 전공이 아닌 언론학 박사과정에 들어와 정신없이 공부하느라 지난 4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모르겠어요.”

학기 중 결석하지 않기와 스케줄 잡지 않기를 원칙으로 해 박사과정 중에도 ‘내 남자의 여자’ 등 5편의 드라마와 2편의 영화를 찍은 그녀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석사 출신인 배씨는 현재 모교 겸임교수로 매체연기를 강의하고 있다. “주변에서 뭣하러 언론학을 전공해서 고생이냐고 해요. 저도 맨 땅에 헤딩하려니까 후회도 많이 했고 운 적도 있죠. 하지만 언론학을 공부하고 나니, 드라마나 연기를 보는 시선이 넓어졌달까요? 배우들이 흔히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있잖아요. 거기서 벗어날 수 있어 연기자로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논문주제인 드라마 게시판 반응은, 배씨가 KBS ‘거짓말’(1998)에 출연할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문제였다. “‘거짓말’은 게시판 문화 1호 드라마예요. 시청률은 낮았지만 마니아들이 나왔고, PC통신 천리안 팬카페 활동을 통해 드라마를 재발견하게 했죠. 그때 사회현상으로서의 수용자의 힘에 처음 관심이 생겼어요. 공교롭게도 그 후 제가 출연한 드라마들이 줄줄이 그런 쪽이라….”(웃음)

“지금껏 학계에서 이뤄진 드라마 연구들은 현장에 못 들어오니까 현장분석이 없고, 현장에 있는 저같은 사람들은 연구를 할 생각을 못하고 그랬죠. 앞으로 제가 양쪽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연예인들도 스스로 자기가 하는 일을 이론화하는데 관심을 가졌으면 하구요. 드라마의 질이 높아지려면 사회가 드라마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수준이 높아져야 하는데 그런데도 기여하고 싶네요.”

자신을 언론학으로 이끈 고대 신방과 김민환 지도교수에게 큰 감사를 표한 그는 조만간 김교수와 공동저술도 할 예정이다. 물론 본령은 연기. 최근 영화 ‘오감도’에 출연한 데 이어 오랜만에 연극에도 도전한다. 올 하반기 중대 연극학과 50주년 기념연극에 출연하고 내년에는 조재현 기획의 ‘연극열전’ 무대에 서는 것.

“좋은 무대에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즐겁죠. 물론 공부라는 관문을 통과했으니, 앞으론 후배들을 지도할 때도 단순히 테크닉이 아니라 대중문화나 드라마에 대한 넓은 시각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평소의 똑부러진 이미지대로, 공부하는 연예인이라는 모델을 제시한 그녀의 말이다.

글=양성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