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규행 옴부즈맨칼럼]소홀한 금강산 기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흔히 백두산은 우리 겨레의 '성산 (聖山)' 이고, 금강산은 명산 (名山) 중의 '명산' 이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명산 중의 명산이라 함은 이 산이 단순히 우리나라의 명산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명산이요, 나아가서 우주의 명산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금강산이란 이름은 화엄경 (華嚴經)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게 하나의 정설이다.

금강산 하면 으레 '일만이천봉' 이라고 연달아 부르는데, 이것 역시 불교적인 표현이다.

그런 표현은 '열락천상 일만이천봉 (悅樂天上 一萬二千峰)' 과 대칭되는 '지상 (地上) 의 일만이천봉' 이 곧 금강산임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강산이 일만이천개의 봉우리로 이뤄졌다고 착각해선 안될 것 같다.

그렇다면 금강산은 모두 몇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을까.

금강산을 연구한 많은 자료들을 살피면 대충 3천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물론 그보다 많다는 기록도 있지만 정확하게 몇개라고 단정한 것은 없지 않나 싶다.

이런 것을 헤아리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확하게 금강산이 몇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은 비단 전문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매스컴의 관심사에 속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그야말로 꿈속에서만 그렸던 금강산이 바야흐로 '현실' 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한데 금강산을 다루는 매스컴의 자세를 보면 그 '현실' 마저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소홀함이 엿보인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특히 세가지 점에서 연유한다.

첫째, 거의 대부분의 매스컴이 금강산을 단순한 '관광' 으로만 보고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한 '관광' 으로 보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을 성싶다.

금강산관광은 그런 차원을 초극하는 역사적인 것으로서의 접근이 절실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둘째, 비록 관광 차원으로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신문기사가 주로 발표 위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금강산관광 관련 기사를 다룸에 있어 주요 신문의 기사가 거의 같다는데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취재' 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왜냐하면 취재란 엄격한 의미에서 발표 기사를 그대로 싣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금강산 관련 기사가 주로 남쪽의 입장에서만 다뤄지고 있을 뿐 북쪽의 입장엔 소홀한 점이 적지 않다.

물론 북쪽관계 기사를 다루는 데는 어떤 한계가 불가피하게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북쪽의 생각이나 자세를 보다 밀도있게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고선 금강산 관련기사의 완벽성을 기했다고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독자의 처지에서 본다면 금강산 현지와 그 주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북쪽의 준비상황도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금강산은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실체로서 신문기자의 취재의욕을 자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금강산의 우리말 옛이름은 '' 또는 '' 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 은 하늘 또는 신 (神) 의 뜻이고, '' 은 성 (聖) 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 은 '신산' , '' 은 '성산' 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말뜻은 고래 (古來) 로 우리의 얼과 숨결이 금강산에 스며있음을 말해 주고도 남는다.

역설적이라고 할는지도 모르지만 금강산은 산 자체만으로도 궁금증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신비 (神비)' 의 베일을 벗기기 어렵다고 한다.

옛선비들은 '시도금강불감시 (詩到金剛不敢詩)' 라고 해서 어떤 시로도 금강산을 표현할 수 없음을 한탄했다.

금강산은 어떤 명문 (名文) 이나 미문 (美文) , 그리고 어떤 명필 (名筆) 이나 명화 (名畵) 로도 능히 다 그릴 수 없는 존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런 존재를 '오늘' 에 생생히 그리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말끔히 풀어주는 기사를 기대한다.

이규행(언론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