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연·정은·지희 세 명은 단칸방에 함께 사는, 29살 동갑내기 친구다. 셋은 스무살때부터 매달 10만원씩 적금을 부었고, 가장 먼저 시집가는 친구에게 그 돈을 몰아주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 지희가 “6월1일 결혼 날짜를 잡았다”고 폭탄 선언을 하면서 극은 출렁인다. 이때까지 모인 돈 3825만원이 몽땅 지희에게 돌아갈 판이다. 세연과 정은은 5월 한달 안에 후다닥 결혼을 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뮤지컬 ‘웨딩펀드’(左)는 발랄함을 한껏 뽐낸다. 주인공 세연(유나영 분)은 지극히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반면 연극 ‘5월엔 결혼할거야’는 웃음과 아픔을 적절히 버무려낸다. 세연(박선민 분)은 당차면서도 여린 인물로 묘사된다. [오디뮤지컬컴퍼니·나온컬처 제공]
연극 ‘5월엔 결혼할거야’의 줄거리다. 다소 황당하지만, 20대 후반 싱글 여성들의 방황과 욕망을 그린 이 연극이 뮤지컬로도 탄생했다. 제목은 ‘웨딩펀드’다. 현재 서울 대학로에서 나란히 공연 중인 두 작품을 비교해 보았다.
◆리얼리티 vs 판타지=연극 ‘5월엔 결혼할거야’의 무대는 눅눅하다. 20대 미혼 여성들은 헐렁한 운동복 차림으로 방안을 뒹군다.
연극은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특별한 무대 전환은 거의 없다. 대사는 직설적이다. 애인에게 차인 정은을 보고 세연은 “진짜 웃기는 새끼네 그거. 그년은? 머리채라도 잡아서 바닥에 확 그어 버리지 그랬어”라며 퍼붓는다. 성공한 컨설턴트가 된 선배는 오랜만에 세연을 만나고는 “얼굴 좀 가려. 여자들 말야, 예쁘지도 않은 큰 얼굴 확 그렇게 드러내고 싶은지…”라며 빈정댄다.
반면 뮤지컬 ‘웨딩펀드’는 다채롭다. 무대 앞·뒤 중간에 칸막이를 두고, 뒤쪽 공간은 방으로 고정시키면서 앞에서 소소한 에피소드를 녹여낸다. 암전이 거의 없이 자유롭게 무대 이동이 이루어지면서 템포감은 올라간다. 주인공의 마음속 환상은 무대에 그대로 재현된다. 탱고춤을 추기도 하고, 경찰관으로 분장한 남성들이 스텝을 밟는가 하면, 의사·발레리노 등이 숨가쁘게 등장하면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캐릭터 vs 유머=연극에서 등장인물은 손에 잡힐 듯 살갑다. 세연은 보습학원 수학강사다. 기어오르는 학생들을 휘어잡을 때 모습은 까칠하기 그지없다. 여러 남자들을 찾아 나서며 수줍어하다가 주저하고, 체념하는 모습에 객석의 공감도는 높았다.
정은은 분투한다. 5년간 사귄 애인이 자신을 차 버리자 스토커로 변신한다. 반면 지희는 내숭 덩어리다. 겉으론 세상물정 모르는 척 하지만 뒤로는 제 몫을 알뜰하게 챙겨간다. 지희가 악역을 맡음으로써 3825만원을 둘러싼 친구들의 과도한 결혼 경쟁은 오히려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에 반해 뮤지컬은 코믹 요소가 많다. 인물에 대한 세세한 묘사보단 상황을 가볍게 툭툭 치고 나갔다. 세연과 정은이 의기투합해 “박지희 독한 년!”을 함께 부를 때의 타이밍은 절묘했다. 압권은 2대8 가르마를 하고 ‘구준표’ 느낌 물씬 풍긴 컨설턴트. “선배들 제치고 승진한 게 뭐 자랑”이냐며 온갖 거드름을 피우다 세연이 실수를 하는 순간 “이런 서민 같은…”이라고 애드리브를 칠 때 객석은 뻥 터졌다.
◆드라마 vs 멜로디=세연은 5년 만에 옛 애인을 다시 만난다. 남자는 곧 결혼을 할 거라고 말한다. 그는 쓸쓸히 집에 돌아온다. 그리곤 여전히 변심한 애인을 못 잊고 아파하는 정은을 바라보며 처연하게 읊조린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또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흐르더라.”
연극에선 테마에 해당하는 이 대목이 뮤지컬에선 그저 스쳐 지나간다. 대신 세연이 옛 애인을 만나러 가는 장면은 5년 전 상황과 오버랩을 시켜 향수를 자극한다. 따스한 발라드곡이 흐르면서 연극의 ‘아픔’은 뮤지컬의 ‘멜로’로 치환된다. 코끝을 찡하게 하지 못한 채 그저 아름답게만 포장하면서 마무리한다.
최민우 기자
▶연극 ‘5월엔 결혼할거야’=8월 30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 02-3675-3677/ 뮤지컬 ‘웨딩펀드’=8월16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1관, 1588-5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