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가치 12년래 최고치 기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세계 도처의 '환란 (換亂)' 에 놀란 돈들이 미국으로 몰려들면서 달러의 돈값이 뜀박질하고 있다.

일본 엔화.프랑스 프랑화.독일 마르크화 등 전세계 주요 18개국 통화에 대해 달러화 가치를 가중 평균해 산출하는 JP모건 지수 (90년 1백) 는 지난해 1월 1백선을 넘어선 뒤 25일 1백16.40까지 솟아올랐다.

이는 86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 경제에 무역적자 증대 등 일부 불안 조짐이 있으나 현 시점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기초 여건이 상대적으로 건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달러 강세로 인해 아시아 등지에서 값싼 제품이 밀려들어 미국의 올 상반기 무역적자는 전년 동기보다 44.2%나 증가한 7백88억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내총생산 (GDP)에서 차지하는 무역적자 비율은 올해 2.5%에 머물 것으로 보여 80년대 (GDP 대비 3.5%수준) 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더욱이 무역적자와 함께 '쌍둥이 적자' 로 일컬어졌던 재정적자는 29년만에 다음달 끝나는 98회계연도중 흑자 전환이 확실시된다.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산하의 DRI연구소는 최근 ^엔화가치가 달러당 2백엔대로 하락하고^중국 위안 (元) 화가 40% 평가절하돼도 강력한 내수를 바탕으로 한 미국 경제에 미칠 파장은 '가벼운 경기 침체' 뿐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달러 강세는 국제 유동자금 유입과 함께 수입제품 가격을 낮춰 물가 상승률을 연 1.6% 안팎으로 묶어 인플레를 막는 기능까지 하면서 아시아 위기로부터 미 경제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올 상반기에만 대략 5천억달러의 유동자금이 순유입되면서 미국의 핫머니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미국으로 돈을 불러 모으는 가장 큰 요인인 증시 활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미 증시의 주가수익비율 (PER) 은 지난 7월에 29배 (倍) 를 기록, 87년 10월 '블랙 먼데이' 당시의 18배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PER는 주가를 주당 이익에 대비시킨 것이기 때문에 수치가 높을 수록 주가가 과대 평가돼 있음을 의미한다.

미 증시에서는 보통 23배를 마지노선으로 여겨왔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가 최근 기준 금리를 현 수준 (연 5.5%) 으로 고수하기로 결정했지만 내부적으로 달러 강세를 한풀 꺾기 위한 금리 인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의 이상 조짐을 철저히 파악하려면 엔화가치 하락보다 달러 약세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