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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500만㎾ 여유 … 아직은 괜찮지만 아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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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올 여름은 10여년 만에 가장 무더울 것으로 보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되자 "전력 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발표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더위를 참지 못한 시민들이 에어컨을 집중적으로 틀면서 전력 수요가 일시에 늘어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혹시 전기가 모자라면 어쩌나, 정전사태가 생기는 건 아닌가"하고 걱정한 분도 있습니다.

◆전기가 부족하면=올 여름에 누구보다 폭염을 걱정하는 곳은 기상청이나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책임진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전력 직원들은 "전력 공급 중단사태 직전까지 갔던 1994년 7월 22일 오후 3시 무렵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다"고 기억합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전력 공급 능력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어요. 당시 전국 발전소의 최대 전기 공급 능력은 2743만kW였으나 7월 22일 오후 3시의 최대 수요는 2669만kW까지 치솟았습니다. 전력 수요가 증가할 경우 감당할 수 있는 공급 능력을 의미하는 공급 예비율은 2.8%까지 떨어졌습니다. 74만kW의 여유밖에 없었던 겁니다. 전문가들은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전국적으로 100만kW의 전력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당시 기온이 1도만 더 올라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한전 관계자는 "공급이 수요를 대지 못했다면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전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공급 능력을 늘 여유있게 확보해 두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 기후의 특성상 계절별 전력 수요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무작정 발전소를 많이 지을 수는 없습니다. 전기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봄.가을에 발전 설비를 놀리면 그만큼 낭비가 되기 때문이지요. 전기는 남는다고 쌓아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아직은 괜찮아=전력 수요는 지난 20일부터 연일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3시에는 전력 수요가 5016만kW로, 사상 처음 5000만kW 선을 넘어섰지요. 지난해에는 8월(22일 낮 12시)에 전력 수요가 연중 최고치(4738만kW)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그 시기가 한달가량 앞당겨졌습니다.

올 여름엔 전력 수요가 지난해보다 7.5%(35만kW)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평균 기온이 예년 수준(32.3도)일 경우엔 최대 전력 수요가 5094만1000kW로 추정되지만 이상고온(34.3도) 현상을 보일 경우엔 5295만7000kW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전은 무더위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도 전력 공급 능력이 5810만4000kW여서 단전사태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공급 예비율이 여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체 전력 생산 설비가 부족해 다른 지역에서 전력을 송전받는 수도권과 제주도는 사정이 다릅니다. 다른 지역에서 전기를 갖다 쓰는 과정에 자칫 문제가 생기면 전기가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국 수요의 42%를 차지하는 수도권은 자체 발전 설비에 의한 공급 능력이 1290만kW에 불과해 지방에서 1220만kW를 송전받습니다. 전력 예비율이 8%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43만kW의 비상전력을 별도로 확보할 계획이랍니다. 공급 예비율이 7.2%인 제주도도 비상전력 13만kW를 별도로 확보할 생각입니다.

◆최악의 경우엔=산업자원부와 한전은 최악의 전기 부족사태를 피하려면 공급을 늘리고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공급 쪽에선 부산복합 3,4호 발전기가 지난 3월에 준공됐고, 울진 원자력 5호기도 이달 중 가동합니다. 17개 변전소와 24개 송전선로의 신설 및 증설 사업도 마쳤습니다. 수요 쪽에선 전기를 덜 쓰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에어컨을 전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축랭식.가스식으로 바꾸거나 가급적 절전형 가전제품을 쓰는 것이지요.

산자부 관계자는 "아무리 대비해도 기록적인 이상고온이나 발전소 가동 중단, 변전소 사고 등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다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3단계 비상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전국적인 예비전력이 300만kW 이하가 되면 3급 경보를 울려 비상 절전에 나서는 등 수요 조절에 들어갑니다. 예비전력이 200만kW 이하면 2급 경보 단계로 미리 약정한 대형 사업장에서 단전에 들어갑니다.

예비전력이 100만kW 이하의 1급 경보가 울리면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되는 송전선로부터 전기 공급이 중단됩니다. 도미노 정전사태를 막기 위해섭니다.

아직은 예비전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괜찮지만 사태가 악화되면 전기 공급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지요.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소득과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1인당 전기소비량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석탄.중유.원자력.LNG 등 에너지원은 거의 대부분(2003년 96.9%)을 해외에서 비싼 달러를 주고 사옵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늘어날수록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값도 많이 듭니다. 전기를 아껴 써야 할 이유를 아시겠지요.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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