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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101년 된 간통죄 ‘식물형벌’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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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해 11월 법원은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B씨에게는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 모두 초범이고 자백을 한 데다 최근 간통죄 위헌성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팀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처리된 32건의 간통사건 1심 판결문을 분석했다. 그 결과 형법 241조(간통죄 처벌 조항)가 사실상 ‘식물 형벌’이 돼 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2건 가운데 15건은 고소 취소 등으로 공소 기각됐다. 나머지 17건 중 16건에 대해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주부 C씨(26) 한 명뿐이었다. 다른 남자와의 불륜을 통해 낳은 아기를 남편의 아이라고 속여 기른 점이 엄벌 이유였다. 또 2건에 대해서만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졌다. 권태형 서울중앙지법 공보판사는 “간통죄 피고인에게 사회봉사까지 시키는 것을 판사들이 꺼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간통 구속자 급감=낮아진 간통죄 처벌 수위는 전국 단위의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간통 혐의로 구속된 사람은 2004년 569명에서 지난해 10명으로 급감했다. 기소된 사람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1000명 이하로 줄었고,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람도 42명에 그쳤다.

이처럼 간통죄 처벌 조항이 힘을 잃고 있는 데는 검찰의 입장 변화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검찰의 간통 사건 처리 기준이 달라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속 수사가 원칙이었고 구형량은 ‘1년 이상’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다른 중죄와 결부됐을 때만 구속을 하도록 하고 있다. 구형량도 ‘8월 이상’으로 낮아졌다. 선고 형량이 구형량의 2분의 1 이하만 아니라면 항소를 하지 않는다.

박균택 대검 형사1과장은 그 원인으로 ‘위헌 논란 등 간통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를 꼽았다. 2007년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해 법원의 위헌심판 제청이 잇따르고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가까스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것이 큰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간통죄 수사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우자의 불륜 현장이 포착되면 112 신고를 해 경찰관과 함께 배우자와 그 상대방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을 열기 위해 열쇠 기술자를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이혼재판 청구소송 신청서와 함께 정식 고소장을 접수시켜야만 경찰관 출동이 가능하다. ‘불법 증거물’에 대한 법원의 태도도 엄격해지고 있다. 지난해 누나의 부탁을 받고 매형의 불륜 장면을 촬영한 남성과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 차에 GPS 추적 장치를 단 남성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용수 서울 노원경찰서 수사과장은 “간통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배우자에 대한 배반감보다는 위자료 등 현실적 이익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국가 형벌권을 활용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고 말했다.

이철재·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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