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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연구비가 샌다]과학기술정책관리연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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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일 과기부 산하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정산과. 과장을 포함한 8명의 정산직원들이 영수증더미와 씨름하고 있다.

과기부에서 지원하는 1천여 국책연구과제의 정산자료로 제출되는 영수증은 줄잡아 30만장. 손충근 정산과장은 "정산이 엄격해질수록 수법도 교묘해져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고 애로사항을 토로한다.

가장 간단한 것은 연구외 목적으로 사용된 것을 잡아내는 것. Y대 생화학과 P교수가 올린 꽃바구니.신문구독료, S대 약대 K교수가 올린 술값 영수증이 적발됐다.

휘발유.엔진 오일.미용실 영수증 등은 오히려 어리숙해서 (?) 걸린 경우라는 것이 정산과 직원의 설명. 학생연구원 인건비 착복 의심이 가는 도장값까지 청구하는 사례도 있어 정산팀을 아연케한다.

심증은 가도 물증을 잡을 수 없는 가짜영수증 의혹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 S대 J교수는 연구기간외 영수증 제출로 2백15만원의 연구비 환수를 지시받자 부랴부랴 세금계산서가 아닌 간이영수증으로 대체했다.

증빙이 어려운 간이영수증도 정산자료로 인정되는데다 공급자측과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대부분 밝혀지지 않고 넘어간다.

품목은 시약이나 실험동물.식대 등 소모품들. 실험동물을 납품하는 B사장은 "실험용 쥐 1백마리를 구입하고 1천마리 값의 영수증을 요구하는 교수도 있다" 고 꼬집는다.

S출연연 P박사의 시약에 얽힌 증언. "원로 연구원 회갑때 연구원 5명이 시약을 팔아 5백만원을 마련한 적이 있다.

연구비 횡령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 말한다.

해외출장도 돈을 챙길 수 있는 좋은 항목. 출장기간을 늘리거나 가족동반 여행도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지만 적발사례는 거의 없다.

각기 다른 부처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교수가 같은 영수증을 과제마다 중복 제출하자 원본 영수증에 정산팀 도장을 찍도록 하는 어이없는 규정도 생겨났다.

연구비가 남으면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고 무조건 다 써버려야 하는 관행도 바로잡아야 할 병폐. 96년 H연구소는 잔액 반납을 우려, 연구종료월에 연구비의 50% 이상을 집행했다가 과기부 감사에서 적발됐다.

이러한 연구자의 흐트러진 자세는 '내가 따온 연구비는 내돈' 이라고 생각하는 도덕불감증에서 비롯된다.

정보통신연구관리단 한 관계자는 "후학들을 동원,가짜영수증을 만드는 일부터 가르치는 연구풍토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 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책과학연구소 임윤철 (조사분석평가실) 실장은 "공대내 기술경영프로그램 설치 등 연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관리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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