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핫라인 악용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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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장성급 회담 합의 내용의 핵심인 양측 함정 간 핫라인이 무용지물이 돼가고 있다. 북한이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달여간 남측의 43회 호출에 북측이 응한 것은 20회에 불과했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전에는 응답하지 않다가 침범 후엔 일방적인 주장만 하고 끊어버린다. 남측을 '어떻게 하면 교란시킬 수 있나'에만 온갖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가시적 성과라고 평가받았던 핫라인이 북한에 의해 이렇게 악용되는 것은 개탄스럽다. 우리 함정이 정상 활동을 하는 것을 놓고도 경계선을 넘었다고 핫라인을 통해 억지 주장을 하니 핫라인이 북한의 교란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핫라인의 본래 의도는 이렇지 않았다. 남북 간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한 하나의 평화적 장치였다. 이러한 선의의 합의를 이런 식으로 악용하니 북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합의 내용과 정신을 서슴없이 깨는 북한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볼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런 행태를 계속한다면 북한이 원하는 대규모 남북경협이나 국제사회의 대폭적 지원도 물 건너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은 이번에 NLL을 어떻게 해서라도 분쟁 지역화하겠다는 의도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바로 이런 점이 북한이 불신을 받는 이유다. 핫라인 설치도 이 NLL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출발한 것인데 남쪽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제 북한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말로는 계속 민족과 평화를 외치면서 이런 식으로 남쪽을 혼란으로 몰아가면 자신들에게 기회가 있을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전념해야 한다. 그 신뢰의 출발점은 핫라인을 합의한 내용과 정신에 맞게 제대로 가동시키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이러한 악의적인 의도를 충분히 파악해 핫라인 이용방식 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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