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아소 문책안 가결 … 일본 정계 ‘아노미 상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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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 정계의 혼란으로 일 정부의 신규 정책 수립 작업이 사실상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음 달 30일 총선을 실시하기로 하면서 중요 법안의 국회 심의가 전면 중단되고 공무원들도 신규정책 추진을 중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 주요 야당은 14일부터 연립여당인 자민당·공명당과의 원내 협상을 전면 중지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이로 인해 이번 회기에 제출된 7개 법안과 지난번 회기에서 넘어온 10개 법안 등 17개 법안이 사실상 자동 폐기 처분됐다. 이들 법안에는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관련된 일용직 파견 금지 법안 등 민생 관련 중요 법안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북한 선박에 대한 화물 검사 특별법도 들어 있어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와 공조키로 했던 북한의 핵·미사일 제재 방안에도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됐다. 이들 법안은 총선 후 차기 국회가 열리는 9월 말 이후에나 다시 심의될 전망이다.

중요 법안 처리가 중단되자 정부 부처와 공무원들은 자민당 주도 아래 추진해 온 신규 정책 수립 작업을 중단했다. 이번 총선에선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도 있어 자민당 정책이 계속 추진될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자민당과 민주당의 정책은 조세·복지·공공사업 등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 내 아소 총리 반대 세력의 ‘아소 흔들기’도 더욱 격렬해졌다. 아소와 라이벌이면서도 자민당 요직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왔던 고가 마코토(古賀誠) 중의원 의원은 14일 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도의회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아소와 거리를 두려는 의도다.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전 간사장 등은 아소가 21일 실시키로 한 중의원 해산을 ‘자폭 테러’라고 비난하면서 해산을 최대한 늦춰 아소를 반드시 총리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아소는 “그동안 중요 법안과 경기 대책을 처리한 실적을 갖고 국민에게 신임을 묻겠다”며 자신의 주도 아래 총선을 치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지방 선거 연승을 주도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전국 유세에 나서 “정권 교체는 100년에 한 번 오는 기회”라며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민주당이 제 1당을 유지하고 있는 참의원에서는 아소에 대한 문책 결의안을 다수결로 통과시켰다고 지지(時事)통신이 보도했다. 참의원은 법적 권한이 없어 아소는 총리직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그의 권위는 더욱 추락하게 됐다. 야당들이 중의원에 낸 내각 불신임안은 이날 자민당·공명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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