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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끝내자]5.재난재발 막으려면-전문가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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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수해때마다 되풀이되는 인재.천재의 논란은 올 홍수에도 예외는 아니다. 피해를 키우는 근본원인을 알면서도 매번 똑 같은 피해가 되풀이된다.

돈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사람이 문제인가. 전문가 좌담을 통해 진단한다.

陰盛稷 = 수해 현장을 좀 돌아보셨습니까. 우선 막대한 피해의 원인을 무엇이라 보십니까. 金勝 = 비가 워낙 많이 왔습니다.

한시간 강우량이 천년에 한번 올 양이었습니다. 전남순천은 1시간에 1백45㎜로 역대 최고였습니다.

趙元喆 = 종래 1시간 기록인 1백18㎜가 이번에 곳곳에서 깨졌습니다.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생성된 비구름이 이동하며 서해 앞바다에서 급격하게 커진 때문입니다. 이변이라기 보다 새로운 기상패턴이라고 봐야 합니다.

陰 = 이번 비는 본류 (本流) 보다 지류 (支流)에 많이 내렸습니다.

평소 지류에는 신경을 덜 썼던게 아닙니까.

趙 = 우선 설계기준이 경직돼 있습니다. 기상이변.환경오염에 따라 강우강도가 달라지고 또 같은 빈도라도 홍수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도시화로 길이 포장되면 유출률이 높아지고 홍수도달거리도 짧아집니다.

당연히 설계기준을 높여야 하는데 아직 옛날 그대로지요. 실무자도 문제라는걸 알지만 설계기준을 높이지 못합니다. 어이없게도 감사때문입니다. '설계기준 = 감사원 기준' 인 셈이지요.

金 = 소프트웨어적 대응력도 부족합니다. 이번 비가 5백년.1천년 빈도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피해규모는 오히려 적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동안 시설투자를 경제규모에 비해 꽤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술적인 대처능력입니다. 과거엔 그런대로 수방 하드웨어를 이해해주는 고위공무원이 있었지만 요즘엔 하천행정을 이해하는 공무원이 별로 없습니다. 때문에 제도.기술이 계속 낙후되고 있습니다.

陰 = 하수처리장도 소형으로 여러 곳에 해야 하수관망을 짧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동부간선도로 등 하천내 임시도로를 당장 철거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방향입니까.

趙 = 수로 확보가 가장 시급합니다. 동부간선도로는 물론 하천 복개시설도 걷어내고, 특히 정릉천 복개구간 2.4㎞는 6개차선중 가운데 2개차선을 걷어낼 것을 서울시에 촉구한 바 있습니다.

陰 = 주택가 빗물같은 내수 (內水) 배수시설은 어떻습니까.

趙 = 내수관리는 하천수 (외수) 의 수위가 올라가서 물이 안빠질때 양수할 시설이 필수입니다. 이 시설은 우기 며칠동안 쓰려고 설치하는데 평소 시운전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지만 예산이 없어 못합니다.

정작 필요할 때는 녹이 슬어 가동이 안되는 경우가 많지요. 이번 지하차도 침수는 모두 인재라고 봐도 됩니다.

陰 = 홍수통제를 행정직 공무원이 상식선에서 운영한다는데.

金 = 그렇죠. 전문인력 확충이 시급합니다. 아무리 대안을 내놓아도 추진할 사람이 없습니다.

趙 = 건설교통부의 경우 하천국이 없어졌고, 심의관이 담당합니다. 치수전문가는 다 나간 셈이지요. 홍수통제소장 발령을 받으면 "강으로 유람간다" 고들 합니다. 순환보직제가 공무원을 슈퍼맨으로 만들겠지만 전문인력은 씨가 마릅니다.

수방시설에 대한 전문적 시각을 가진 관료가 있어야 문제파악.예산확보 등 대책을 제대로 세웁니다.

陰 = 도로를 개설하려면 교통.환경영향평가 등을 하는데 수해.하천영향평가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재해위험지구는 왜 한 곳도 지정되지 못했나요.

趙 = 지정하면 아마 구청장이 쫓겨날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이 있으면 음지 (陰地) 라고 봅니다. 멀쩡한 지역도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하면 음양원리와 결부시켜 건강 걱정을 하고, 집값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陰 = 어떻게 하면 재경부.건교부.지자체 등이 하천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겠습니까.

趙 = 매년 물난리가 나야 투자가 늘어납니다 (웃음) .

陰 = 시민의 안전불감증도 문제가 되겠군요. 6백년전 서울은 10만명규모의 도시로 설계됐습니다. 요즘 1천만이 넘게 살면서 고층화.고밀도화만 했지 수방개념은 부족한 게 아닙니까.

趙 = 우리나라는 특히 인구이동이 많습니다. 지역.지형 특성을 잘 모르는 곳에 살지요. 이번 지리산폭우 피해자를 보면 사망자중 한명을 빼고는 모두 지리산을 잘 모르는 타지역 사람이었습니다.

金 = 지리산의 경우 이번처럼 큰 피해를 입을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당국의 홍보부족, 시민의 안전불감증으로 필요 이상 비싼 대가를 치렀지요.

陰 = 법을 강화해야 하나요.

金 = 제도보다는 사람문제입니다. 상황을 잘 이해하는 기술인력이 없습니다.

趙 = 지리산 관련 지자체는 전북 남원시, 전남구례군, 경남산청.함안군 등이 있습니다. 국장.계장들은 "요즘 우리는 아주 편합니다" 라고 하더군요. 민원인이 실무자는 안 만나고 군수.시장을 직접 찾는 답니다.

피아골에서 실종사고가 났는데 시신 (屍身) 이 하동에서 나오니까 "관할아니다" 며 서로 미루는 실정입니다.

金 = 홍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시민 스스로 대비하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가 모든 걸 해줄 수는 없습니다.

趙 = 내집 축대는 내가 해결해야지요. 주민들은 손도 까딱 안하고 군인들이 해주기만 바라보는 광경은 보기 민망했습니다. 재해에 대한 시민의식이 많이 달라져야 합니다.

陰 = 구난.방재시스템 통합은 바람직합니까.

趙 = 행자부내에만 상황실이 3개나 운영되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재난관리에 대한 통합개념이 없었습니다.

陰 = 뭐가 걸림돌입니까.

趙 = 사람, 부처이기주의때문이지요. 서로 다른 부처로 업무를 안뺏기려, 또 안가려 난리입니다.

金 = 서로 일을 이해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데 자기가 속한 조직만 중시하는 듯 합니다.

陰 = 수방시설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金 = 이번 기회에 수방시설 전반을 점검.평가했으면 합니다.

물론 한꺼번에 모두 하기에는 예산부담이 클 것이고, 우선은 평가할 수 있는 일반적 기준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陰 = 홍수 예.경보, 관측시스템은 어떻습니까.

金 = 현 홍수 예.경보시스템은 본류만 돼 있고, 중소하천은 구축중입니다.

지류는 무방비상태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이번 폭우에 대한 대응은 비교적 잘했다고 해야지요. 시스템을 중류.지류로 확장해야 합니다.

陰 = 대학.연구소 연구활동은 어떻습니까.

金 = 수자원 관련 연구는 수문.수리학 등 순수학문분야고 방대한 투자가 필요해 국가가 주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천관리는 건교부가, 연구비 배분은 과기처가 맡고 있습니다. 수방문제는 과기처입장에서는 연구우선순위가 낮습니다.

陰 = 기술분야 협력문제는 어떤가요.

趙 = 사실 '엔지니어링 코디네이터' (기술전반의 조정가)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술자들이 따로 논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金 = 같은 기술자들 끼리도 분야간 협력이 쉽지 않습니다. 하천.도로.교량 등 기술분야를 조정.관리한후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죠. 현재는 기술을 총괄하는 일을 행정가가 하고 있습니다. 최근 정부조직개편때마다 기술자 자리가 줄고 있습니다.

문제를 공학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처리하면 위급한 상황에서는 절대 먹혀들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은 기술자들이 행정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세계적인 추세와 역행하고 있습니다.

趙 = 교육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전문성만 중시하고 조절.조정하는 데는 인색하지요.

정리 = 장세정 기자

◇참석자

▶趙元喆 연세대 교수.국립방재연구소장

▶金 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연구실장

▶ 陰盛稷 중앙일보 전문위원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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